아빠의 장례식을 마치고 가족회의를 하면서 아빠의 집 정리를 내가 맡기로 했다. 엄마가 돌아가시고 남은 것들을 정리할 때 힘들었으리라고 걱정하며 큰 언니가 틈나는 대로 돕겠다고 해주었다.
막내인 내가 먼저 그리고 혼자 부모님의 집 정리를 해야겠다는 마음을 먹게 된 까닭은 무얼까. 지근거리에 살며 엄마아빠를 지켜보았기에 누구보다도 두분의 마지막 일상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아니, 사실은 나도 잘 모르겠다. 다만 내가 정리하는 것이 좋겠다는 마음이 들 뿐이었다. 어쩌면 정리를 끝내고 나면 알게 되겠지.
아빠의 상태가 급박하게 악화되고 결국 장례식까지 이어졌기에 장례식을 끝내고 나서도 피곤함이 가시질 않았기에 정리는 차근차근하겠노라고 선언해둔 터였다. 엄마의 물건들을 정리했던 경험을 떠올리며 하나씩 하나씩 차근차근 해나가기로 했다.
가족회의 다음날을 정리의 시작일로 정했고 하루에 하나의 품목에 해당하는 것만 정리하기로 했다. 그리고 시작하는 첫날의 품목은 아빠가 복용하거나 사용했던 의약품으로 정했다.
부엌의 선반과 서랍장, 거실, 서재까지 둘러보며 꺼내다보니 먹던 것, 바르던 것, 보조식품까지 생각보다 양이 꽤 많았다. 날짜를 보며 분류하고 나니 약국에 가져가서 폐기를 부탁할 것과 유효기간이 남아 내가 쓸 수 있는 것, 그리고 쓸 수는 있지만 나에게는 필요없는 건강기능식품들로 나뉘었다.
매일의 복용약, 해열진통제, 피부약···, 그 약들에 아빠를 모시고 갔던 진료과목들을, 아빠가 해야했던 수술들, 아빠의 병상 옆에서 보냈던 시간들이 떠올랐다. 다양한 약들 속에서 아빠의 병력을, 아빠의 삶을 돌아보고 있었다. 아빠는 아흔에 가까운 나이에도 또래에 비하면 건강한 편이었는데 그래도 이렇게나 많은 약이 있었구나 마음이 스산해졌다.

종이 봉투 두개에 가득 담은 의약품을 양손에 들고 약국으로 갔다. 약 처분을 부탁드려도 될까요. 그럼요, 주세요 대답하던 약사님은 흔쾌히 받아들긴 했지만 묵직한 무게에 놀란 표정이었다. 감사합니다. 인사를 하고 나오며 속으로 되뇌었다. 감사해요. 받아주지 않으신다면 어떻게 처분해야 할까 걱정했을거에요.
일과를 끝내고 집으로 돌아와 남은 건강식품을 보다가 하나 더 결심했다. 사용가능한 것들은 버려서 쓰레기를 늘리기보다는 사용할 수 있는 이에게 나누자. 혹시나 하고 품고 있느니 당장 필요하거나 유용하게 쓸 수 있는 이들에게 보내 기여하자.
당장 당근에 올리니 순식간에 7명이 나눔을 신청했다. 사람들의 이야기 속에서 아이 셋의 엄마인데 받을 수 있겠느냐는 누군가에게 혹시 지금 와서 가져가실 수 있는지 물었다. 당장 갈 수 있어요. 감사합니다. 두 문장에 나도 챙겨들고 나갈 채비를 했다.

나눔은 생각지 못한 캔커피를 받고 돌아오는 것으로 끝났다. 캔커피를 잘 먹지 않건만 감사하다며 내미는 그 손을 거절하딘 어려웠다. 아빠, 아빠도 세 아이를 키우는 엄마가 기운낼 수 있다면 좋겠지? 아빠가 위에서 흐뭇하게 보길 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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