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성리뷰MoonsongReview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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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눔 33

유품정리 Day43. 고민거리가 된 자개장에 씁쓸한 마음

유품을 정리하는 내내 고민을 하게 만든 건 바로 자개장이었다. 엄마와 아빠는 단층집에 집의 두 배 가까운 정원이 딸려 있던 이 집에서 살다가 90년대 초에 이웃집들처럼 층을 올려 다가구주택을 만들었다. 3층으로 이사하며 안방에 놓은 자개장은 아마도 엄마와 아빠의 꿈이자 성취의 증거였던 것 같다. 눈부시게 화려한 12자 장롱과 화장대와 수납장까지. 집을 짓는 동안 뒷집에 잠시 세를 들어 살다가 이곳에 이사했을 때 엄마와 아빠의 뿌듯해하던 얼굴들과 안방문을 열고 들어오면 창문으로 드는 눈부신 햇살에 반짝이던 자개장, 옻칠 특유의 향이 좋았다. 엄마의 아름다운 옷들이 걸려있던 왼쪽 장. 그리운 냄새까지도 함께 차곡차곡 쌓여있던 이불장. 아빠의 정장과 코트들이 걸려있던 오른쪽 장. 장문을 열고 엄마옷들 속에 얼..

유품정리Day38. 생활에 필요한 물품들처럼 생활에 필요한 마음씀

아직 쓰지 않은 두루마리 휴지. 각티슈. 부엌의 소모품들을 모아서 다른 곳으로 옮겨두었다. 생활에 필요한 물건들을 보며 살아간다는 건 이런 물건들을 건사해야한다는 것임을 새삼 생각했다. 우리 자매들은 일주일에 한번씩 돌아가면서 장을 봤다. 아빠의 일주일치 생활에 필요한 것들을 카톡을 할 수 있는 요양사님이 전달해주시면 목록을 보고 장을 보고 아빠와 식사를 하곤 했다. 아빠는 요양사님과 함께 장을 보러가기도 하고 혼자 혹은 친구분들과 어울려 보내시기도 했지만 꼭 필요한 것들은 우리가 챙겨왔다. 이미 엄마가 아프기 전부터였으니 언제부터였는지 기억도 가물가물했다. 한달에 한 번씩 돌아오는 장보기가 귀찮았었다. 아빠는 제대로 눈길도 주지 않고 따뜻한 말 한마디 건네지 않는데 요양사님이 말한 게 진짜일까 생각하곤..

유품정리Day37. 엄마아빠의 이부자리에서 추억의 냄새를 맡았다.

엄마아빠가 사용했던 그리고 손님용으로 준비해두었던 이부자리를 옮겨두었다. 폐기할 유품들만 두고 남겨둘 물건들을 여전히 옮기는 중. 물건의 종류도 분량도 상당하기에 매일 조금씩 옮기는 것 외에는 별수가 없었다. 우선 식기, 주방용품들, 다음으로 가벼운 가전제품들을 옮기고 나서 이부자리 차례였다. 사실은 계속해서 미루어두고 있었던 일이었다.  아빠가 갑작스레 떠나고 난 뒤, 아빠가 늘 누워있던 자리를 치울 수 없었다. 사실은 아빠가 며칠이나 일어나는 것조차 힘겨워해서 이부자리에 실수를 한 적도 있었기에 매트위의 시트도 이불도 다 빨래를 해서 접어둔 채였다. 아빠가 쓰던 것들을 치우는 게 아빠가 돌아가신 것을 돌이킬 수 없음을 확인하기라도 하는 듯 해서 오늘은 아직 아니야, 다른 것들부터 치우자 하고 미룬지가..

유품정리Day36. 아빠의 가전들, 물건은 삶의 일부이기도 하다.

아빠의 선풍기 두 대. 전자레인지. 가스레인지들을 남겼다. 사실 아빠의 유품을 정리하는 내내 아빠가 떠나고도 다음을 생각해야한다는 게 그래서 물건들을 다음의 필요를 생각하며 정리해야한다는 게 줄곧 마음에 부담이었다. 그래도 결국 남은 사람들은 남은 대로 살아가야한다는 사실을 나 외에 언니들은 그리고 다른 이들은 잘 받아들이고 있는 것 같은데, 나는 어째서 이리 쉽지 않은지.정리하다가 멈추고 하다가 멈추기를 반복하며 지나온 한달여. 남은 물건들 중에 쓸 가능성이 높은 물건들을 빼두고 있는 지금 시점에도 물건의 용도를 따지는 순간순간 마음이 편치 않을 때가 종종 있다. 선풍기 두대. 가스렌지. 전자레인지를 내리면서도 그랬다. 여름 내 아빠가 거실에서 티비를 보면 맞은 편 부엌에선 아빠를 살펴주시던 요양사님이..

유품정리Day35. 가족모임을 위한 식기를 남기다.

아빠와 엄마의 식기장에서 대부분을 기부처로 보내고 재활용으로 내놓은 것들 외에 남은 것들 중에 일부를 다른 공간에 임시로 옮겨두었다. 처음에는 모든 걸 기부나 재활용으로 내놓을 생각이었는데 언니가 어느날 가족모임에 쓸 것들을 놔두어야하지 않겠느냐고 물었다. 정말? 나는 되물었다. 머릿속으로는 만나서 무언가를 만들어 먹게 될 일이 있을까 생각하고 있었다. 엄마아빠 기일 그리고 명절에 가족들이 모이면 그래도 뭔가 먹게 될 텐데 쓸 게 있어야 하잖아. 언니의 설명에 그래 그럼 남겨두어야겠네 답하면서도 사실은 얼른 수긍이 되지 않았지만 그래도 언니와 함께 그릇을 골랐다. 밥그릇, 국그릇, 반찬과 국이나 찌개를 담을 그릇, 수저와 집게 등을 신문지에 싸서 박스에 포장해두었다. 국이나 찌개를 끓일 냄비, 밥을 하거..

유품정리Day33. 소파뒤에서 발견한 엄마의 물건들은 아직 마음을 아프게 한다.

소파 뒤 구석에서 엄마의 유품을 발견하고 기부품으로 보냈다. 언듯 장을 보러갈 때 쓰는 가방처럼 보이는 무언가가 소파 뒤 벽에 비스듬히 기대어 세워져 있었다. 가방은 지퍼로 완전히 펼칠 수 있는 구조오 되어 있는 보조가방이었는데 안에는 아직 한 번도 쓰지 않은 내의와 덧신 그리고 양말이 나왔다. 어리둥절해서 묶음을 하나씩 살펴보며 깨달았다. 엄마가 있던 병원에서 간병인과 함께 지내던 몇 달, 간병인이 보내달라고 했던 것들이었음을. 마음이 쿵 내려앉았다. 나는 여전히 엄마가 떠오르면 마음이 무너졌다. 눈물이 고이다 흐르기 시작했다. 아빠보다 더 오랜 시간 아파서 스러지는 엄마를 보았기 때문일까. 엄마가 떠난 건 이미 사년이 다되어 가는 일이었지만 아빠가 떠나고 두 달째 아빠와 엄마의 흔적을 함께 마주할 때..

유품정리Day32. 아빠의 데이베드, 큰 언니의 소파로

많은 물건들을 정리하고 가구들이 남았다. 여기저기 알아보았지만 가구를 매입하는 이들은 견적을 보내달라고 하고는 사진을 보고 모두 거절하고 말았다. 매입을 할 가치가 없는 가구라며 그냥 처분하라고 했다. 다들 이 집과 함께 나이를 먹어온 오래되고 낡은 가구들이지만 그 중에서 딱 두가지 가치 있는 가구는 자개장 세트 그리고 데이베드였다. 특히 데이베드는 아빠가 거실에서 소파겸용 침대로 계속 사용한지 일이년밖이 되지 않는 것이었다. 엄마가 돌아가시고 얼마 지난 어느 날 거실을 차지하고 있었다. 아빠가 그게 그렇게 사고싶었나 어이가 없었지만 혼자 지내는 대부분의 시간을 거실에서 사람들을 불러 차마시거나 점심식사를 하고 티비를 보는지라 그런가보다 했었다. 여름 내 아빠는 데이베드에 앉아 있곤 했다. 현관문을 열고..

유품정리Day31. 유품을 정리하며 맞는 생각지도 못한 순간들, 이를테면 필리핀에서 온 가톨릭신자와의 조우.

아빠의 유품을 정리하며 생각지도 못한 순간들을 맞는다. 이를테면, 필리핀에서 온 독실한 카톨릭 신자와의 당근나눔의 순간. 그리고 서로의 앞날을 기도해주며 헤어지는 따뜻한 마음을 마주하는 일. 시작은 당근에 나눔으로 오래된 전기그릴을 내놓은 것이었다. 아빠의 물건들을 정리하다가 구석진 공간에 몇 년간 쌓여있던 것들을 드디어 꺼내어 확인하게 되었고 그 중에 하나가 바로 그 전기그릴이었다. 삼성마크가 선명하긴 했지만 오래 전부터 쓰고는 제대로 닦아두지 않았는지 기름때가 먼지와 함께 엉겨 더러운 상태였다. 그대로 소형가전폐기물로 내놓을 것인지, 아니면 그래도 쓸 이를 찾아 나눔을 할 것인지 고민하다가 혹시나 하고 당근에 내놓았다. 물론 고민을 하지 않은 건 아니었다. 기름때가 찐득하게 눌러붙은 물건을 그 누가 ..

유품정리Day30. 다리미가 필요한 이에게, 다리미를.

다리미를 당근 나눔으로 정리했다. 그런데 이 다리미는 내가 사용해본 적도 본 적도 없는 것이었다. 그랬다. 정리를 하면서 깨달은 건 아빠는 우리 가족이 사용한 적이 없는 오래된 물건들을 많이도 가지고 있었다는 것이었다. 아마도 어디선가 누군가가 내놓은 것을 계속해서 가져왔던 것이리라. 이 다리미 역시 그중의 하나였다. 아빠는 버려지는 물건들이 아까웠던 것이리라. 그래서 그 물건들을 방에 거실에 옥상에 마당에 모아두고 언젠가 쓸 날을 기다렸던 걸까. 아니면 누군가에게 주려 했던 걸까. 이제는 당신이 가고 내가 이 물건들을 대신 사람들에게 나누어주게 되었다. 콘센트를 꽂아 테스트해보니 충분히 뜨거워지는 다리미 열판. 우선 기부기준에 맞는지 확인해보려고 살펴보아도 제조년월일을 찾을 수 없었다. 분명 10년은 ..

유품정리Day29. 밥솥을 나누며 고마움은 표현하는 것이라는 걸 생각했다.

밥솥을 당근으로 나눴다. 기부로 하는 것이 훨씬 편하고 기부영수증도 발행되지만 기부를 받는 단체들은 10년이 넘은 전자제품은 받지 않는다. 전자제품외에도 다양한 물품에 대한 제한조건이 있기에 품목에 대한 기준을 자세히 적어둔 안내문을 꼼꼼히 읽어봐야한다. 당연히 이해가 된다. 기부를 받은 물건이 쓸모가 없다면 수거도 정리도 폐기도 모두 인력과 비용이 드는 일이 되고 결국은 의도했던 대로 재활용도 다른 이를 위한 도움도 불가능한 일이 된다. 누군가가 매장에 와서 살 수 있을 만한 컨디션이 아니라면 내놓기가 어렵고 오래된 물건보다는 새로운 물건을 선호하는 게 당연한 세태에 더더욱 누구도 거들떠보지 않는 물건을 두는 건 짐이 될 뿐이다. 그러니 안내문을 읽고 기준에 맞지 않는 밥솥, 이 10년이 넘은 제품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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