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성리뷰MoonsongReview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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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빠 9

유품정리Day39. 아빠가 남겨둔 전기용품들을 정리하며

아빠가 남겨둔 전기용품들, 그 중에서도 형광등, 멀티탭, 케이블들을 정리해서 남겨두었다. 아빠는 집관리에 열심이었다. 1990년대 초반, 오래된 단층집을 다층집으로 짓고 전세를 주고 나서 시간이 지나며 집의 관리에도 세입자들과의 관계에서도 신경을 써야하는 일들이 자연스레 늘어났다. 언제부터인가 수리하는 이를 불러 고치는 비용을 아껴보겠다며 지인을 부르기도 하고 직접 고치려는 시도도 점차 늘어갔고 그들의 어깨너머로 배운 것들을 바탕으로 장비며 용품들을 늘려갔다. 수많은 짐들 그중에서도 마당의 많은 짐들과 부엌의 빈 공간을 채우고 있는 것들이 대부분 그런 물건들이었다. 그 중에서 아직 쓰지 않은 새 것이거나 그나마 쓸만한 것들을 골라 박스에 담아 다른 공간에 옮겨두었다. 아빠가 하던 일들은 이제는 아마도 나..

유품정리Day34. 폐기물을 정리하며, 후회가 남지 않기를 바랄 뿐.

정리를 하는 내내 가장 어려웠던 것이 분류였다. 부모님의 나이만큼 어쩌면 그보다 더 오래된 것들부터 아빠가 돌아가시기 직전에 산 물건들까지 온갖 종류의 물건들이 뒤엉켜 있었고 그 물건들을 어디서부터 어떻게 손대야하는지부터가 막막했다. 분류부터 해야겠다고 마음 먹고 물건들을 모으기 시작했지만 각 방, 부엌, 욕실, 거실마다 물건들이 흩어져 있어서 더더욱 분류를 힘들게 했다. 결국은 가장 분량이 많은 품목들부터 한 품목씩 모으는 편을 택하게 되었는데, 거기에서 쓸 수 있는 것과 아닌 것을 분류하는 것도, 쓸 수 있는 것들을 기부할 것인지 나눔할 것인지 혹은 이후에 가족들이 사용할 것을 고려해 남겨둘 것인지를 분류해야하는 큰 산에 부딪혔다. 가족들에게 혹시라도 갖고 가고 싶은 것들이 있는지 묻고 다음으로는 공..

유품정리Day30. 다리미가 필요한 이에게, 다리미를.

다리미를 당근 나눔으로 정리했다. 그런데 이 다리미는 내가 사용해본 적도 본 적도 없는 것이었다. 그랬다. 정리를 하면서 깨달은 건 아빠는 우리 가족이 사용한 적이 없는 오래된 물건들을 많이도 가지고 있었다는 것이었다. 아마도 어디선가 누군가가 내놓은 것을 계속해서 가져왔던 것이리라. 이 다리미 역시 그중의 하나였다. 아빠는 버려지는 물건들이 아까웠던 것이리라. 그래서 그 물건들을 방에 거실에 옥상에 마당에 모아두고 언젠가 쓸 날을 기다렸던 걸까. 아니면 누군가에게 주려 했던 걸까. 이제는 당신이 가고 내가 이 물건들을 대신 사람들에게 나누어주게 되었다. 콘센트를 꽂아 테스트해보니 충분히 뜨거워지는 다리미 열판. 우선 기부기준에 맞는지 확인해보려고 살펴보아도 제조년월일을 찾을 수 없었다. 분명 10년은 ..

유품정리Day15. 약품류 두번째 정리

정리를 하다보니 여기저기에서 약이 나왔다. 엄마가 와병중이던 시절 간병인 선생님이 부탁했던 관장약, 아빠가 눈이 침침해져 쓰던 안약들, 물파스, 피부약을 보며 아빠가 호소하던 통증들이 떠올랐다. 자고 일어나도 피곤하게 하는 근육통, 간지럼증•••. 나이 들어가는 게 당연한 일임에도 슬픔이 어리는 게 참 싫었다. 엄마와 아빠의 설움을 지켜보는 게 힘들었다. 힘이 되어주고 싶었지만 한편으로는 어쩔 수 없다면 우리 웃으며 받아들여보자고 이야기하고 싶었는데, 그건 차마 하기 어려운 말이었다. 당신들처럼 나도 늙어가며 아픈 순간들에 서러울 것임을 알고 있었기에. 그래도 엄마, 아빠, 더는 아프지 않고 평안히 쉬었으면 해. 내려다보며 빙그레 웃고 열심히 살아가는 우리를 지켜봐주었으면 해.

유품정리Day5. 옷 정리 그리고 기부와 나눔

다섯번째 품목, 아빠의 옷을 정리했다. 가장 분량이 많고 가장 많이 기억을 불러일으키는 무엇. 엄마의 물건들 중에서도 옷을 정리하는 게 제일 힘들었더랬다. 아빠도 예외는 아니었다. 간병을 하러 병원에 가느라 급히 빨랫줄에서 걷어 개지 못하고 펼쳐두었던 옷들부터 그간의 일들을 파노라마처럼 떠올리게 했다. 나는 아빠의 모든 옷들이 위치한 자리를 한장 한장씩 찍기 시작했다. 안방 침대. 옷걸이. 자개장. 서랍장. 서재의 서랍장. 작은 방의 옷장. 옥탑방의 옷장까지. 아빠는 왜 그랬을까. 옷을 집안 곳곳에 제각기 나누어 두었던 이유가 무엇이었을까. 엄마가 남긴 추억을 지우듯. 모든 공간이 본인의 것임을 확인하듯. 의문을 품으며 사진을 다 찍고 큰언니가 오기를 기다렸다.우리는 마주하자마자 제법 익숙하게 곧바로 정..

유품정리Day3. 간병용구 나눔

세 번째 날, 입원 후 간병에 필요했던 소모용품들을 나누었다. 단지 기력이 없으신 건가 반신반의하며 찾았던 동네병원에서 구급차로 응급실로 다시 호흡기내과 전문의가 있는 2차 종합병원으로 전원하고 났을 때, 우리는 엄마를 간병했을 때처럼 길고 지루한 싸움이 시작될 수 있다고 생각했다. 매일밤을 돌아가며 지새고 이제는 간병인을 구하고 간병용품들을 제대로 갖춰야 했다. 하지만 하루가 다르게 증세는 심각해졌고 결국 일주일도 지나지 않아 돌아가시고 나니 간병용품들은 채 뜯지도 못한 채 고스란히 남고 말았다. 병원에서 나오며 한꺼번에 짐을 빼야 했고 장례 절차에 신경 쓰느라 대충 집에 쌓아두었던 것들이 고스란히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하루에 한 종류씩. 쓰일 수 있는 것들은 필요한 이들에게.마음먹었던 기준을 되뇌며..

유품정리Day2. 식품류 정리

두 번째 날, 식품류- 그러니까 반찬과 식재료들을 정리했다. 정리를 서둘러 시작한 이유가 바로 이것들 때문이었다. 시간이 지날수록 상하고 결국에는 벌레를 불러들이면, 처리가 더 복잡하고 힘들어지는 건 순식간이었다. 아빠가 병원에 있을 때부터 이미 신경을 쓰이게 하는 것들이었지만 아빠의 상태가 하루가 다르게 악화되면서 미처 처리하지 못했다. 장례가 시작되고는 아예 생각조차 하지 못했다. 집에 돌아오면 쓰러지듯 누웠다가 아침에 두들겨 맞은 듯한 몸을 끌고 다시 장례식장으로 향한 며칠, 그리고 이후로도 주변정리에 며칠을 보내고 나서야 큰언니에게 도움을 청했다. 혼자서는 도저히 엄두가 나지 않았다. 큰언니와 시간을 정하고 마트로 가서 음식물쓰레기봉투를 샀다. "몇 리터를 사시겠어요?" 질문에 갑자기 머릿속이 분..

유품정리 Day1. 약품류 정리

아빠의 장례식을 마치고 가족회의를 하면서 아빠의 집 정리를 내가 맡기로 했다. 엄마가 돌아가시고 남은 것들을 정리할 때 힘들었으리라고 걱정하며 큰 언니가 틈나는 대로 돕겠다고 해주었다. 막내인 내가 먼저 그리고 혼자 부모님의 집 정리를 해야겠다는 마음을 먹게 된 까닭은 무얼까. 지근거리에 살며 엄마아빠를 지켜보았기에 누구보다도 두분의 마지막 일상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아니, 사실은 나도 잘 모르겠다. 다만 내가 정리하는 것이 좋겠다는 마음이 들 뿐이었다. 어쩌면 정리를 끝내고 나면 알게 되겠지. 아빠의 상태가 급박하게 악화되고 결국 장례식까지 이어졌기에 장례식을 끝내고 나서도 피곤함이 가시질 않았기에 정리는 차근차근하겠노라고 선언해둔 터였다. 엄마의 물건들을 정리했던 경험을 떠올리며 하나..

인생은 앞을 향해 살아가야 하지만 이해하기 위해서는 뒤돌아봐야 한다.

인생은 앞을 향해 살아가야 하지만 이해하기 위해서는 뒤돌아봐야 한다.올리버 색스의 자서전의 첫 장을 넘기며 키에르케고르의 이 문장을 읽었던 순간을 기억한다. 그리고 다시, 나는 아빠가 돌아가시고 장례식이 끝났을 때 이 문장을 떠올렸다.아빠가 남긴 집 그리고 그곳을 가득 채운 아빠의 물건들 앞에서.  * 이 기록이 부모님의 집을 정리하는 이들에게, 도움이 되기를 바란다. 돌봄과 상실, 애도의 시간의 와중에도 정리를 도맡아야하는 많은 이들에게 위안이 되기를 바란다. 구체적인 실행에서든, 심리적인 정리에서든 이 글이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기를 바란다. 돌봄과 정리가 오롯이 개인의 책임과 부담이 되는 현재이지만 '개인이자 사회 구성원으로서의 마무리' 과정에는 그와 관계된 이들의 많은 노력과 에너지가 들어간다는 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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