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섯번째 품목, 아빠의 옷을 정리했다.
가장 분량이 많고 가장 많이 기억을 불러일으키는 무엇. 엄마의 물건들 중에서도 옷을 정리하는 게 제일 힘들었더랬다. 아빠도 예외는 아니었다. 간병을 하러 병원에 가느라 급히 빨랫줄에서 걷어 개지 못하고 펼쳐두었던 옷들부터 그간의 일들을 파노라마처럼 떠올리게 했다.
나는 아빠의 모든 옷들이 위치한 자리를 한장 한장씩 찍기 시작했다. 안방 침대. 옷걸이. 자개장. 서랍장. 서재의 서랍장. 작은 방의 옷장. 옥탑방의 옷장까지.
아빠는 왜 그랬을까. 옷을 집안 곳곳에 제각기 나누어 두었던 이유가 무엇이었을까. 엄마가 남긴 추억을 지우듯. 모든 공간이 본인의 것임을 확인하듯. 의문을 품으며 사진을 다 찍고 큰언니가 오기를 기다렸다.











우리는 마주하자마자 제법 익숙하게 곧바로 정리에 착수했다. 한 번에 하나의 품목씩. 모두 한 자리에 꺼내고 분류한다. 기부할 것과 버릴 것 그리고 남길 것으로.
기력이 쇠하고는 늘 편안한 옷만 찾던 아빠. 고무줄 바지에 등산복 재질의 티셔츠. 심장 수술을 한 이후로는 발이 쉽게 붓고 아파서 보드라운 수면양말이 아니면 안된다던 아빠. 우리가 사준 옷들을 아주 가끔 외출할 때만 입던 아빠. 언니들의 결혼식에 입었던 고급정장들을 모시듯 옷장 속에 걸어둔 아빠. 반짝거리는 실크넥터이와 고급스러운 무늬의 울머플러. 종이케이스에서 꺼내지도 않은 고급면 양말들. 옷을 분류하며 아빠의 시간들을 되짚고 있었다.
사치스러움과는 거리가 멀었던 아빠. 좋은 옷을 사주어도 늘 익숙하고 편안한 옷을 고집하던 아빠. 젊은 시절에는 늘 멋지다 잘생겼다는 말을 듣던, 엄마가 아름다움에 반해 한번 본 사람과 결혼을 결심하게 한 아빠. 엄마와 사진을 찍어주려 하면 이제 나이든 모습을 뭐하러 찍냐고 손사래치던 아빠. 그래도 늘 세수와 면도를 하며 단정히 지내던 당신. 속옷도 집에서 입던 옷도 외출복도 손수건마저 자기가 정한 위치에 두던 아빠. 아빠, 당신의 시간 속에서 편안했나요? 그랬기를. 당신이 당신의 삶에 만족했기를.






아빠를 생각하면서도 손은 쉬지 못했다. 분량이 워낙 많아서 한꺼번에 모을 수 없어 각 방마다 모아서 처리를 시작했다. 지자체 쓰레기 분류기준을 다시 한번 확인했다. 의류는 불용성폐기물이라 특수마대가 필요했다. 우리는 두 번을 더 나가서 기부할 종이박스와 쓰레기로 내놓을 특수마대를 샀다.
마지막 방까지 끝내고 나니 총 8개의 종이박스와 산더미같이 쌓인 옷걸이. 네 개의 특수마대가 나왔다.
아름다운가게와 굿윌스토어 두군데를 비교해보고 수거스케줄이 더 빠른 곳으로 기증을 신청하고 옷걸이는 종류별로 정리해 당근에 나눔을 올렸다. 곧바로 나눔을 신청한 이에게 그날 저녁 옷걸이를. 이어서 수거차에 상자를 떠나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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