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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아빠 집을 정리하며

유품정리Day4. 꽃 나눔

문성moonsong 2024. 9. 26. 12:07

네번째 날, 집에 있던 조화들을 한데 모았다.

아빠는 조화를 계단의 단마다 꽃병에 꽃아 두었더랬다. 조화 특유의 선명한 인공적인 색깔들을 나는 그닥 좋아하지 않았다.  아빠가 조화를 사기 시작한 건, 엄마의 치매가 심각해지기 시작했던 어느 날이었다. 아빠는 집안에 화분을 그리고 마당의 화단에 꽃을 심었다. 꽃을 피울 때가 되면 몇 번이고 꽃이 얼마나 예쁜지 보라고 이야기하는 아빠를 보며, 어쩌면  엄마에게 그리고 딸들에게 말을 걸줄 몰랐던 당신이 택한 수단이었는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했다.
엄마가 혼자서 집밖으로 나들이는 커녕 햇살을 쬐러 나가기도 어려운 상태가 되자 아빠는 엄마에게 당신이 보기에 화사한 꽃들을 보여주고 싶었던 것 같다. 꽃이 늘어 계단을 꽉 채우고 한참이 지나 엄마는 세상을 떠났다. 아빠가 모은 조화는 고스란히 그 자리에서 먼지와 함께 시간을 보냈다.
아빠도 돌아가시고 나는 형형색색의 이 꽃들이 먼지를 계속 뒤집어쓰거나 버려져 썩지 않는 쓰레기가 되는 것보다는 값지게 쓰이게 하리라 마음먹었다. 먼지를 털고 한데 모아 당근에 나눔으로 올렸다.

많은 이들의 신청이 왔다. 다짜고짜 나에게 달라는 이들도 있었지만 인사를 하고 자신의 사연을 이야기하는 이들도 있었다. 셀프웨딩을 하는데 쓰고 싶다는 이도 부모님의 시골집을 꾸며드리고 싶다는 이도 돌아가신 부모님의 산소에 놓아드리고 싶다는 이도 있었다.
새로운 출발을 하는 이를 축하하는 것도 다른 이들의 위안이 되는 것도 좋을 것 같아서 나누어서 드리기로 했는데 스케줄을 이유로  결국은 부모님의 산소에 놓겠다는 분만이 남았다. 오히려 잘되었다 싶었다.
나는 전체 다발에서 몇송이만 골라서 엄마아빠가 함께 자리할 새로운 수목장 자리의 돌화병에 꽃을 꽃다발을 정성스레 만들었다. 아빠가 옛 집에도 지금 집에도 싶었던 그리고 늘 꽃이 피면 흐믓해했던 모란. 엄마가 좋아하던 붉은색으로 고르고 역시 엄마가 좋아하던 보라색 수레국화를 더했다. 라벤더와 은방울꽃까지 더해서 완성을 하고는 다시 한 번 꽃말을 찾아보았다. 부귀영화. 행복. 침묵과 정절. 반드시 행복해질 것.

품안에 다 들 수 없는 꽃들을 두 바구니에 가득 담아서 약속장소로 나갔다. 형형색색꽃들에 기쁨을 감추지 못하며 너무 예뻐요, 감사해요를 연발하시던 아주머니. 기어이 내 손에 미에로화이바 두병을 쥐어주시며 가벼운 발걸음으로 떠나셨다.
아빠. 당신이 자랑하던 그 꽃들, 여전히 다른 사람들을 기쁘게 해요. 흐뭇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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