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성리뷰MoonsongReview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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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근 13

유품정리Day31. 유품을 정리하며 맞는 생각지도 못한 순간들, 이를테면 필리핀에서 온 가톨릭신자와의 조우.

아빠의 유품을 정리하며 생각지도 못한 순간들을 맞는다. 이를테면, 필리핀에서 온 독실한 카톨릭 신자와의 당근나눔의 순간. 그리고 서로의 앞날을 기도해주며 헤어지는 따뜻한 마음을 마주하는 일. 시작은 당근에 나눔으로 오래된 전기그릴을 내놓은 것이었다. 아빠의 물건들을 정리하다가 구석진 공간에 몇 년간 쌓여있던 것들을 드디어 꺼내어 확인하게 되었고 그 중에 하나가 바로 그 전기그릴이었다. 삼성마크가 선명하긴 했지만 오래 전부터 쓰고는 제대로 닦아두지 않았는지 기름때가 먼지와 함께 엉겨 더러운 상태였다. 그대로 소형가전폐기물로 내놓을 것인지, 아니면 그래도 쓸 이를 찾아 나눔을 할 것인지 고민하다가 혹시나 하고 당근에 내놓았다. 물론 고민을 하지 않은 건 아니었다. 기름때가 찐득하게 눌러붙은 물건을 그 누가 ..

유품정리Day30. 다리미가 필요한 이에게, 다리미를.

다리미를 당근 나눔으로 정리했다. 그런데 이 다리미는 내가 사용해본 적도 본 적도 없는 것이었다. 그랬다. 정리를 하면서 깨달은 건 아빠는 우리 가족이 사용한 적이 없는 오래된 물건들을 많이도 가지고 있었다는 것이었다. 아마도 어디선가 누군가가 내놓은 것을 계속해서 가져왔던 것이리라. 이 다리미 역시 그중의 하나였다. 아빠는 버려지는 물건들이 아까웠던 것이리라. 그래서 그 물건들을 방에 거실에 옥상에 마당에 모아두고 언젠가 쓸 날을 기다렸던 걸까. 아니면 누군가에게 주려 했던 걸까. 이제는 당신이 가고 내가 이 물건들을 대신 사람들에게 나누어주게 되었다. 콘센트를 꽂아 테스트해보니 충분히 뜨거워지는 다리미 열판. 우선 기부기준에 맞는지 확인해보려고 살펴보아도 제조년월일을 찾을 수 없었다. 분명 10년은 ..

유품정리Day29. 밥솥을 나누며 고마움은 표현하는 것이라는 걸 생각했다.

밥솥을 당근으로 나눴다. 기부로 하는 것이 훨씬 편하고 기부영수증도 발행되지만 기부를 받는 단체들은 10년이 넘은 전자제품은 받지 않는다. 전자제품외에도 다양한 물품에 대한 제한조건이 있기에 품목에 대한 기준을 자세히 적어둔 안내문을 꼼꼼히 읽어봐야한다. 당연히 이해가 된다. 기부를 받은 물건이 쓸모가 없다면 수거도 정리도 폐기도 모두 인력과 비용이 드는 일이 되고 결국은 의도했던 대로 재활용도 다른 이를 위한 도움도 불가능한 일이 된다. 누군가가 매장에 와서 살 수 있을 만한 컨디션이 아니라면 내놓기가 어렵고 오래된 물건보다는 새로운 물건을 선호하는 게 당연한 세태에 더더욱 누구도 거들떠보지 않는 물건을 두는 건 짐이 될 뿐이다. 그러니 안내문을 읽고 기준에 맞지 않는 밥솥, 이 10년이 넘은 제품을 ..

유품정리Day27. 간병용품을 보내며 누군가의 간병을 응원하기

이제 얼마 남지 않은 물건들을 돌아보며 차분히 사진을 찍고 유품정리 견적을 내려는데 처분하지 못하고 남아있던 물건들이 다시 한번 눈에 걸렸다. 그중 하나가 바로 이 욕창방지 매트리스. 엄마가 병상에서 일어나지 못하는 상태가 되었던 막바지 무렵, 우주복과 욕창방지매트리스, 가로로 긴 쿠션과 같은 의료기기나 간병용품들이 필요하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 하나씩 구매해야했다. 아빠가 갑작스레 아파서 잘 일어나지 못했던 지난 늦여름, 결국은 병상에서의 시간으로 이어지고 욕창매트리스를 구해야했다. 정신없이 병원을 오가며 병원 앞에서 욕창매트리스를 대여했을 때에는 몰랐다. 우리집에 엄마가 쓰던 욕창 매트리가 있었다는 것을 까마득히 잊고 있었다. 아빠가 돌아가시고 장례절차를 마치고 가족회의를 거쳐 집을 정리하기 시작하고 ..

유품정리Day19. 마음을 아리게 한 한복 정리

구석구석 미처 손을 대지 못한 곳들을 정리하기 시작했다. 맘먹고 목장갑을 끼고 자개장위의 상자들을 내려서 뽀얗게 쌓인 먼지를 털었다. 하나씩 열어볼 때마다 마음 한켠이 아렸다. 사진 속에서 보았던 아기인 내곁에 선 아빠가 입고 있던 강렬한 초록 마고자. 검은색 두루마기. 언니들이 결혼할 때 맞추었던 엄마 그리고 아빠의 한복들. 형언하기 어려운 감정들 속에 하나씩 만져보았다. 곱디고운 주단. 엄마와 아빠는 중요한 날에만 꺼내어 입어서 거의 새것이나 다름 없었다. 모아서 박스에 넣고 신발장도 정리하다가 엄마의 꽃신까지 발견했다. 눈물이 쏟아질까봐 서둘러 먼지를 털고 박스에 담았다. 굿윌스토어에 물품기부신청을 했다. 누군가가 이 옷을 기쁘게 입을 수 있으면 좋겠다. 귀한 날 곱게 다장하고 화사한 모습으로 환히..

유품정리Day18. 서예. 한국화. 목판글씨 나눔. 아빠는 이 모든 액자를 갖고 싶어 했을까.

남은 액자들을 마지막으로 나눔한 사람은 부산과 서울을 오간다는 어느 분이었다. 마침 서울에 올라오는 길에 나눔을 보게 되었고 금세 처분하거나 할 게 아니라 오래도록 갖고 있을거라며 모두 자신에게 주어도 좋다고 하셨다. 처음에 만났던 무례한 -황학동에서 팔아먹겠다던- 사람이 떠올라서 약간 경계를 했지만 근처로 곧바로 오겠다며 명함을 먼저 보내와서 우선은 한국화 중에 특히 무겁고 큰 것들을 보내기로 했다. 두어명 신청했던 이들이 답을 제대로 하지 않고 까먹었다며 오리발을 내밀던 상황이었는데 일러준 대로 suv차량으로 와서 뒷좌석을 눕혀 자리를 만들고는 무거우면 자신이 들겠다는 말에 마음이 놓였다. 대화를 나누다보니 앤틱을 모으고 있고 모은 것들만 컨테이너 두박스가 넘는다는 사실도 알게 되었고 그림들을 모으고..

유품정리Day17. 정물화. 풍경자수. 풍경사진 나눔

이번에는 옥상정원에 걸고 싶다는 어떤 분이 당근나눔을 신청하셨다. 걸고 소중히 보시겠다는 말에 개방공간에서도 잘 견딜 수 있는 반코팅된 정물화와 자수 풍경화를 드리기로 했다. 약속시간이 다 되어 카트에 혹시나 싶어 사진풍경화까지 챙겨서 싣고 만나기로 한 장소로 갔다. 이번에도 미리 큰 액자이니 차를 가져오셔야 한다는 귀뜸 덕인지 suv 한 대가 나타났다. 나이 지그하신 분이 서둘러 내리며 반가워 하셨다. 너무 고맙다고 어떻게 이런 걸 나누냐고 거듭 말씀하시길래 가서 즐겁게 감상하시면 된다고 혹시나 풍경화도 하나 가져가실까 하고 가져왔다고 했더니, 정말 감사하다며 갖고 싶었는데 너무 과한 부탁일까봐 말씀을 못하셨다고 했다. 모두 가져가셔도 좋다는 말에 행복해하는 그분을 보며 나도 기분이 좋아졌다. 아빠, ..

유품정리Day16. 풍경사진 나눔하며 속상함도 털어버리기

폭우가 쏟아지던 금요일 너무 속상한 일이 일어났다. 당근에 액자들을 모아서 올렸을 때 한꺼번에 가져가겠다고 몇 번이나 호언장담하던 사람이 일방적으로 약속을 펑크내고 말았다. 자초지종은 이랬다. 액자를 나눔하는 날짜를 정하면서 내가 가능한 날은 금요일부터지만 금요일에는 며칠전부터 비가 온다고 예고가 된 날이라 비가 온다고 하니 다른 날 가져가는 건 어떠신지 물어봤었다. 가능한 날은 금요일 이후로 정하면 된다고 했지만 한사코 금요일에 가져가겠다고 비가 온다고 해도 많이 오지 않을 거라며 가져갈 수 있다고 자신해서 반신반의 하면서도 알겠다고 그럼 조금 일찍 당겨서 대문앞에 내려놓겠노라고 했다. 그리고 금요일 당일. 아침부터 흐린 날씨에 오전에도 한 번 물었고 기어이 가져가겠노라며 주말에 황학동에 가져가서 물건..

유품정리Day14. 산수화. 괴석도 나눔

아빠가 가지고 있던 액자들을 사진찍어 당근에 올리곤 그런 류의 액자(그림)들이 아빠와 같은 어르신들에게 인기가 많다는 걸 실감했다. 번호를 붙여 갖고싶은 걸 이야기해달라고 했더니 어떤 분이 신수화와 괴석도를 갖고 싶다고 하셨다.흔쾌히 시간약속을 정하고 당일날, 시간에 맞춰 액자를 내렸다. 산수화는 가로길이가 양팔이 닿지 않을 만큼 컸고 못에 걸린 걸이를 하나 빼자마자 묵직한 무게에 넘어질 뻔 했다. 조심스럽게 애를 쓰며 내리고도 계단을 지나 대문앞까지 혹시라도 무게 때문에 떨어뜨릴까봐 그래서 액자프레임이나 유리에 손상이 갈까봐 손과 팔에 온 힘을 주고 있었다. 그렇게 간신히 대문앞까지 가져다 두고 잠시 마트에 들렀는데 마침 약속시간보다 이르게 도착하셨다는 문자를 받았다. 잠시 밖에 나와있는데 액자들은 대..

유품정리Day13. 화조 자수 액자 나눔

화조자수 액자를 나누었다. 당근으로 나눔하기로 한 시간은 저녁 8시 반이었다. 표구된 액자는 꽤나 무겁기에 일찌감치 내려놓았다가 약속시간에 맞게 들고 나가는 길에 사진을 찍어두었다. 이 과정을 기억해두고 싶어서. 먼지가 쌓인 액자를 닦다 눈여겨 보지 않았던 자수의 세부가 보였다. 한 쌍의 새 그리고 모란꽃. 글씨까지 꽤 예쁘고 깔끔하게 마무리되어 있었다. 아빠는 이 화조 자수를 어디에서 얻었을까. 약속시간을 넘겨 30분이 지나도록 나타나지 않는 이에게 채팅을 보냈더니 길을 잘못들어서 헤매고 있다는 답을 받았다. 주소까지 보냈는데 도대체 어디일까 답답해하다가 지도를 캡쳐해서 정확한 위치를 표시해서 보내드렸다. 다시 한참이 지나서야 나타난 이는 아마도 육십대는 넘으셨을 여성분이셨다. 연신 미안하고 고맙다고 ..

카테고리 없음 2024.1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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