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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아빠 집을 정리하며

유품정리Day2. 식품류 정리

문성moonsong 2024. 9. 23. 14:56

두 번째 날, 식품류- 그러니까 반찬과 식재료들을 정리했다. 

정리를 서둘러 시작한 이유가 바로 이것들 때문이었다. 시간이 지날수록 상하고 결국에는 벌레를 불러들이면, 처리가 더 복잡하고 힘들어지는 건 순식간이었다. 아빠가 병원에 있을 때부터 이미 신경을 쓰이게 하는 것들이었지만 아빠의 상태가 하루가 다르게 악화되면서 미처 처리하지 못했다. 장례가 시작되고는 아예 생각조차 하지 못했다. 집에 돌아오면 쓰러지듯 누웠다가 아침에 두들겨 맞은 듯한 몸을 끌고 다시 장례식장으로 향한 며칠, 그리고 이후로도 주변정리에 며칠을 보내고 나서야 큰언니에게 도움을 청했다. 혼자서는 도저히 엄두가 나지 않았다. 

큰언니와 시간을 정하고 마트로 가서 음식물쓰레기봉투를 샀다. "몇 리터를 사시겠어요?" 질문에 갑자기 머릿속이 분주해졌다. 용량이 클수록 봉투의 갯수는 줄어들겠지만 혹시라도 수거시간을 놓치면 요즘 같은 날씨에는 하루이틀만 지나도 벌레가 창궐할 게 분명했다. 2리터짜리로 주세요. 20장 묶음이니 40 리터면 어느 정도는 가능할 것 같았다. 안 되면 한 번 더 사러 오면 되겠지. 

마음의 준비가 필요했는지도 모른다. 언니가 오기 전 집안 곳곳의 창문을 열어 집안을 환기시키고 냉장고와 찬장을 둘러봤다. 언니와 함께 냉장칸의 반찬통들을 하나씩 열어보며 버릴 것과 남길 것을 확인했다. 쓰레기를 만들고 싶지 않았지만 이미 상태가 변질되었거나 변질되기 직전인 것들, 억지로 먹으려 해도 먹을 수 없는 것들은 물기를 빼고 음식물쓰레기봉투에 담기 시작했다. 그리고 냉장칸의 식재료들, 냉동칸의 식재료들, 찬장과 냉장고 옆, 테라스 앞뒤의 실온의 식재료들도 분류해 정리했다. 

쓰레기를 늘리고 싶지도 않았고 식재료를 낭비하고 싶지도 않았다. 내가 소화할 수 있는 것들은 최대한 소화하고 가능하다면 사람들과 나누고 싶었다. 그러나 나도 억지로 먹고 싶지 않은데, 과연 사람들이 받을지 의문이었다. 아빠가 돌아가시고 남은 반찬과 식재료라는 게 부담스러울 수도 있겠다는 데에 생각이 미치고는 나와 언니가 감당할 수 있는 것만 남겨두고 최대한 정리하기로 했다. 아빠가 건강을 생각하며 꼬박꼬박 챙겨드셨던 달걀과 고기, 토마토와 오이, 간식으로 즐겨드셨던 고구마, 이따금 별미로 드셨던 건빵···, 아빠가 먹었던 것들을 헤아리며 지금까지 살아온 아빠의 날들을 생각했다.  

정리는 몇 시간이 지나고야 끝났다. 음식물쓰레기 봉투 여섯 개 그리고 언니가 가져가서 정리하고 처분하기로 한 식재료 용기 여섯 개, 언니와 내가 나누어 소화하기로 한 식재료들이 남았다. 우리는 플라스틱용기, 유리용기, 김치통에 냄비들까지 설거지해 물기를 말리고  쏟아지는 빗속에서 음식물쓰레기를 집 앞에 수거박스에 정리하고, 음식물이 묻은 비닐봉지들을 담은 일반쓰레기봉투까지 내놓았다. 택시를 부르고 정리할 식품들이 든 봉투들을 둘이서 양손 가득 나누어 들었다. 언니네 집에 가서 다시 정리하고 음식물쓰레기를 분류하고서야 모든 정리가 끝났다. 기진맥진했지만 그래도 더는 썩어나가거나 벌레가 생길 것이 없다는 것에 안도가 되었다. 


신선한 가을날씨가 찾아온 다음날, 다시 아빠의 냉장고문을 열었다. 어제 최소한으로 남긴 것들이 이제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아빠가 담아두었던 쌀과 찹쌀과 흑태, 고춧가루와 젓갈, 고추장과 된장, 달걀과 야채···. 기력을 잃던 순간까지 스스로 식사를 했던 아빠를 생각했다. 

나는 혼자 다짐했다. 시들고 상하기 전에 요리를 해 먹을 것. 살아있는 먹고 마시며 몸을 챙길 것. 그렇게, 더는 먹고 마시지 못하는 순간이 될 때까지 일상을 최선을 다해 살아낼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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