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빠가 가지고 있던 액자들을 사진찍어 당근에 올리곤 그런 류의 액자(그림)들이 아빠와 같은 어르신들에게 인기가 많다는 걸 실감했다. 번호를 붙여 갖고싶은 걸 이야기해달라고 했더니 어떤 분이 신수화와 괴석도를 갖고 싶다고 하셨다.
흔쾌히 시간약속을 정하고 당일날, 시간에 맞춰 액자를 내렸다. 산수화는 가로길이가 양팔이 닿지 않을 만큼 컸고 못에 걸린 걸이를 하나 빼자마자 묵직한 무게에 넘어질 뻔 했다. 조심스럽게 애를 쓰며 내리고도 계단을 지나 대문앞까지 혹시라도 무게 때문에 떨어뜨릴까봐 그래서 액자프레임이나 유리에 손상이 갈까봐 손과 팔에 온 힘을 주고 있었다. 그렇게 간신히 대문앞까지 가져다 두고 잠시 마트에 들렀는데 마침 약속시간보다 이르게 도착하셨다는 문자를 받았다. 잠시 밖에 나와있는데 액자들은 대문 앞에 있으니 곧바로 가져가셔도 된다고 말씀을 드리고 홀가분한 마음이었는데, 집에 돌아오자 어떤 분이 대문앞에서 액자를 부수고 있었다가 나를 보니 당황하셨다.
그 분이 바로 당근으로 액자를 가져가기로 한 분이셨다. 괴석도는 차에 들어가지만 산수화는 차에 들어가지 않는다는 이야기에 둘러보니 액자프레임을 부수고 액자유리를 세워두고는 그림만 둘둘 말아 차안에 넣어둔 채였다. 액자유리를 넣어보시는 걸 도와드릴까요, 물었다. 같이 유리를 조심스레 들어서 차에 비스듬히 대각선으로 이리 저리 넣어보다가 순간 손으로 칼날처럼 유리가 파고들었다. 피가 흘러나오고 있었다. 날카로운 유리날에 손가락을 벤 것이었다.
손을 떼고 나서야 그분은 목장갑을 끼고 있다는 걸 깨달았다. 피는 멈추지 않고 후두둑 떨어지기 시작했다. 갑자기 울컥 속이 상했다. 아빠가 침대 옆에 걸어두고 보았던 산수화였다. 고풍스러운 액자프레임과 유리를까지 표구가 된 것인데, 차에 들어가지 않는다면 차라리 다른 사람을 위해서 양보하면 될 일을, 이렇게 부수고 날카로운 유리를 버려두고 가려고 했다니. 나중에 내가 치우려고 할때에 혹은 다른 누군가가 지나가며 건드렸어도 위험했을 것이다.
마음을 가라앉히고 일단 지혈을 하러 들어갔다. 소독을 하고 임시로 밴드를 붙이는데 일 때문에 나가야하는 시간을 넘어서고 있었다. 아직 피가 멈추지 않았지만 서둘러 나서며 그 분에게 말씀드렸다. 처음부터 포구된 액자를 포함해서 나눔을 드린 것이고 남은 것들을 잘 정리해주시길 부탁드린다고. 그리고 서둘러 떠나면서 마음이 불편했다. 그분은 정말로 유리를 치우고 가실까, 아니면 끝까지 조각낸 프레임과 유리를 버리고 가실까. 하루를 끝내고 돌아오는 길에 나도 모르게 걸어들어오며 대문 앞부터 살피고 있었다.
다행히 아무것도 없었다. 그분은 유리와 쪼갠 프레임들도 포함해서 가져가신 모양이었다. 물건을 정리한다는 건, 이리도 손이 가고 마음이 쓰이는 일이구나. 이따금 아빠가 골목에서 청소하던, 쓰레기를 분리수거하던 모습이 떠올랐다. 아빠, 당신의 물건들을 누군가가 소중히 쓰면 좋겠어요. 아니면 적어도 유용하게 쓰면서 그 물건이 주는 고마움을 느꼈으면 좋겠어. 내가 너무 큰 욕심을 갖고 있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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