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우가 쏟아지던 금요일 너무 속상한 일이 일어났다.
당근에 액자들을 모아서 올렸을 때 한꺼번에 가져가겠다고 몇 번이나 호언장담하던 사람이 일방적으로 약속을 펑크내고 말았다.
자초지종은 이랬다. 액자를 나눔하는 날짜를 정하면서 내가 가능한 날은 금요일부터지만 금요일에는 며칠전부터 비가 온다고 예고가 된 날이라 비가 온다고 하니 다른 날 가져가는 건 어떠신지 물어봤었다. 가능한 날은 금요일 이후로 정하면 된다고 했지만 한사코 금요일에 가져가겠다고 비가 온다고 해도 많이 오지 않을 거라며 가져갈 수 있다고 자신해서 반신반의 하면서도 알겠다고 그럼 조금 일찍 당겨서 대문앞에 내려놓겠노라고 했다.
그리고 금요일 당일. 아침부터 흐린 날씨에 오전에도 한 번 물었고 기어이 가져가겠노라며 주말에 황학동에 가져가서 물건이 쓸만 한지 봐달라하고 팔아야한다는 속내를 드러냈다. 찜찜했지만 그래도 쓰레기가 되는 것보다는 나으리라 싶어 다시 한번 다짐을 받고 미리 부탁해두었던 대로 큰언니와 함께 액자를 옮겼다. 조금씩 떨어지기 시작하는 빗속에도 이십여개의 액자를 내려두는데, 갑자기 무섭게 쏟아지는 비에 쫄딱 젖으면서도 서둘러 비닐로 액자들을 감싸두었다.
그리고 다 내려두었다고 가져가시면 된다고 약속대로 모습을 찍은 사진과 문자를 보냈더니 갑자기 가져가지 않겠다고 전화가 왔다. 너무 황당해서 무슨 말씀이시냐고 약속하시지 않았냐고 했더니 도리어 화를 내며 폐기물처리하라며 전화를 끊었다. 화가 나는 것도 잠시, 동양화와 액자가 젖어버리고 말까봐 너무 걱정이 되어 다시 쏟아지는 비를 맞으며 액자를 비를 피할 수 있는 곳으로 옮겨두었다.
큰언니는 힘들게 노력했는데 어이없는 일을 당하기까지 하니 꼭 이렇게 해야하느냐며 그냥 유품정리업체에 폐기하자고 했다. 나쁜 사람이라고 수화기 너머 늘어놓는 이야기들이 너무 의심스러눴다고 몇번이고 이야기했다. 이미 젖은 채로 무거운 것들을 옮겨서 더는 생각하고 싶지도 않았다.
언니와 헤어지고 저녁을 지나 밤이 되자 문득 악의적인 누군가때문에 쉽게 좌절하고 싶지 않다는 생각을 했다. 나눔의 선한 의도가 제대로 닿을 수 있으려면, 생각하며 다시 한번 당근을 시도해보기로 했다.
액자들을 내용별로 나누어 다시 한번 당근에 올리며 판매해서 이득을 취할 사람들이 아니라 그림이나 사진을 좋아하고 감상할 분들에게 나누겠다고 적어두었다.
그리고 올리고 얼마 되지 않아 많은 분들이 신청해주셨다. 다행히도. 그리고 기쁘게도.
처음으로 가져가신 분은 풍경사진 세점.
꽤 큰 사이즈라 차를 꼭 가져오셔야한다는 당부를 했더니, 중년의 부부 두분이 오셔서 함박 웃음으로 가져가셨다.
어린 시절 시골에 살아서 풍경이 너무 좋다고 후기를 남겨주셔서 나도 모르게 흐뭇하게 웃을 수 있었다.
악의를 선의로 돌릴 수 있는 기회를 얻어서 정말 기뻤다.
아빠, 아빠에게도 이 풍경들이 좋았듯 다른 이들에게도 좋을 수 있다는 게 기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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