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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아빠 집을 정리하며

유품정리Day22. 아빠 신발들을 정리하며 물건의 의미를 생각하다

문성moonsong 2024. 10. 30. 10:13

집안 구석구석을 살펴보며 미뤄두었던 신발장과 신발장위에 쌓여있던 신발상자들을 열었다. 열 켤레 남짓한 신발이 주인을 잃고 놓여 있었다. 큰 언니가 결혼 후에 엄마아빠, 네 자매, 총 여섯명의 신발을 넣을 때에는 한없이 좁았던 신발장이 이제는 텅 비어 아빠의 신발들이 있어도 휑하게 비어보였다. 

명치끝에서 올라오는 무언가에 멈추고 싶지 않아서 서둘러 정리를 시작했다. 사진을 찍어 상태와 갯수를 확인하고 먼지를 털고 준비해두었던 종이박스에 차곡차곡 담았다. 몇 년 전 사주었던 넉넉한 아디다스 운동화를 마음에 들어하셨는데 올해 여름이 다가올 무렵 운동화가 닳아서 필요하다고 하셔서 새로이 주문했던 흰 운동화는 거의 새것이나 다름없었다. 언니들이 결혼식에 입을 정장과 맞춰드린 구두도 거의 새것이나 다름없었다. 새 운동화는 아끼느라 신지 않았고 정장구두들은 불편해서 신지 않았으리라는 걸 말해주지 않아도 짐작할 수 있었다. 아빠는 그런 사람이었다. 검소하고 아끼는 사람 그리고 차려입는 걸 좋아하지 않는 사람. 

신발장 위에 쌓여있던 박스들에는 아직 엄마의 흔적이 남아있었다. 엄마가 선물로 받았던 신발, 등산화, 겨울에 신던 부츠, 아빠는 엄마의 물건을 냉정하리만치 가차없이 버렸었는데, 이것들은 잊고 있었던 걸까 아니면 차마 버리지 못했던 걸까. 아니면 신발장 위의 박스들까지 손을 대기에는 이미 체력도 기력도 떨어진 상태였던 걸까. 

무엇이었든, 아빠가 이제는 평안하길 그리고 엄마와 더는 외로움없이 그리고 걱정없이 행복하길. 

신발들을 모아 큰 박스에 포장하고 나니 두 박스가 꽉 차고도 신발이 한켤레 남아 남아있던 신발상자 중에 깨끗한 것을 골라 봉해두었다. 굿윌스토어에 기부신청을 하고 수거날짜를 예약하는 것으로 신발정리가 끝났다. 

정리를 해 나가면 해 나갈수록, 물건은 그 자체로 많은 에너지를 빨아들인다는 것을 느끼고 있다. 물건을 사는 것으로 끝이 아니라 유지하고 관리해야하고 혹 그렇지 않더라도 결국엔 어딘가에 자리잡아 생활에 영향을 미친다. 먼지를 뒤집어 쓰고 쓰이지 않고 있다 해도 공간만 차지하는 것이 아니라 결국은 청소와 정리라는 시간과 에너지까지 쓰게 만든다. 필요해서 혹은 편안하게 혹은 즐겁게 해주어 사용하는 것이 아니고는 가지고 있는 게 의미없다는 걸, 아니 의미없는 걸 넘어 손해라는 걸 뼈져리게 느낀다.

아빠, 엄마, 이렇게 날 가르치고 싶었던 거야? 당신들의 물건이 진정 필요한 사람들의 손에 가도록 할게요. 그러니, 내가 무사히 이 정리를 끝낼 수 있게 해줘. 그리고 다 끝내고 웃을 수 있게 해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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