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재의 책들과 서류들이 빠져나가고 나고 서랍과 책장에 남아있던 물건들 중에 학용품과 사무용품들을 모았다.
그래도 유품정리업체에 맡겨버릴까 하다가 그래도 남아있던 빈 박스 하나를 어느 정도 채워 다시 한번 지역공부방으로 보내주는 기부처로 보내기로 했다.
아빠는 오랫동안 책과 펜, 필사와 함께했다. 거의 돌아가시기 직전에 기력이 약해지실 때까지 그렇게 무언가를 읽고 적고 정리해온 일생이었다. 마지막 아빠의 책상에는 주로 성경책과 신앙에 관련한 서적들이 자리하고 있었다. 엄마가 돌아가시고 나서 엄마에 대한 미안함과 외로움을 신앙에 어느 정도 의지하셨다는 게 다행이라는 생각을 하곤 했다.
이제 남은 물건들을 모아보니 삼각자, 컴퍼스, 대형자, 줄자, 각도계, 어린 시절 늘어선 책상 가운데 원형 테이블에 앉아 학생들을 가르치던 아빠의 모습이 뇌리에 선명히 떠올랐다. 아빠는 내내 문구와 함께하는 삶 속에서 즐겁기도 하고 괴롭기도 했을까. 아빠의 문구들이 다른 이들에게 새로운 지식을 알아가는 설레임과 기쁨 그리고 뿌듯함으로 가는 도구가 되기를. 스러지는 시간 속에서 나이를 먹어가며 짙어졌던 아빠의 한숨과 걱정과 두려움은 이제 다 사라졌기를. 지금은 괴로움 없이 편안하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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