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리미를 당근 나눔으로 정리했다.
그런데 이 다리미는 내가 사용해본 적도 본 적도 없는 것이었다. 그랬다. 정리를 하면서 깨달은 건 아빠는 우리 가족이 사용한 적이 없는 오래된 물건들을 많이도 가지고 있었다는 것이었다. 아마도 어디선가 누군가가 내놓은 것을 계속해서 가져왔던 것이리라. 이 다리미 역시 그중의 하나였다. 아빠는 버려지는 물건들이 아까웠던 것이리라. 그래서 그 물건들을 방에 거실에 옥상에 마당에 모아두고 언젠가 쓸 날을 기다렸던 걸까. 아니면 누군가에게 주려 했던 걸까. 이제는 당신이 가고 내가 이 물건들을 대신 사람들에게 나누어주게 되었다.
콘센트를 꽂아 테스트해보니 충분히 뜨거워지는 다리미 열판. 우선 기부기준에 맞는지 확인해보려고 살펴보아도 제조년월일을 찾을 수 없었다. 분명 10년은 훌쩍 지난 듯 보이는 빛바란 글씨에 이 다리미 역시 기부는 블가능해보였다. 문제는 없었고 그대로 폐기물로 내놓기보다는 나눔을 해주는 편이 낫겠다 싶었다.
당근에 올렸더니 몇시간도 되지 않아 가져가고 싶다는 이가 나타났다. 독거노인분에게 가져다주고 싶다는 사연. 그 독거노인은 누구일까. 혹은 스스로를 지칭한 걸까. 아니면 가까운 누군가. 꼬리를 무는 생각들을 뒤로 하고 약속을 잡았다.

약속당일. 약속장소에 도착하니 노년의 여성분이 기다리고 계셨다. 어떤 말을 건넬지 몰라 머뭇거리는 그분에게 안녕하세요 당근이시죠. 인사를 건네고 그분에게 잘쓸게 요 답하시는 그분에게 네 유용히 쓰시면 좋죠 웃음으로 답하는 여유가 생긴 나를 보았다.
돌아서 집으로 오는 길 생각했다. 아빠. 당신이 생각한 이 다리미의 쓸모는 무엇인가요. 이제 당신 대신 이 물건이 필요한 이에게 가게 되었으니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쓸모를 다하고 있다고 기뻐해줄래요? 오늘도 당신 덕분에 뿌듯함의 순간을 한번 더 경험했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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