밥솥을 당근으로 나눴다.
기부로 하는 것이 훨씬 편하고 기부영수증도 발행되지만 기부를 받는 단체들은 10년이 넘은 전자제품은 받지 않는다. 전자제품외에도 다양한 물품에 대한 제한조건이 있기에 품목에 대한 기준을 자세히 적어둔 안내문을 꼼꼼히 읽어봐야한다.
당연히 이해가 된다. 기부를 받은 물건이 쓸모가 없다면 수거도 정리도 폐기도 모두 인력과 비용이 드는 일이 되고 결국은 의도했던 대로 재활용도 다른 이를 위한 도움도 불가능한 일이 된다. 누군가가 매장에 와서 살 수 있을 만한 컨디션이 아니라면 내놓기가 어렵고 오래된 물건보다는 새로운 물건을 선호하는 게 당연한 세태에 더더욱 누구도 거들떠보지 않는 물건을 두는 건 짐이 될 뿐이다.
그러니 안내문을 읽고 기준에 맞지 않는 밥솥, 이 10년이 넘은 제품을 당근에 올리는 건 당연한 일이었다. 멀쩡하고 기능을 쓰는데에도 문제가 없지만 오래된 물건. 그래도 당근에서는 무료나눔으로 글을 올리자마자 연락이 왔다. 가지고 있던 밥솥이 마침 고장나서 밥솥이 필요하다고 한 분에게 나눔을 해주기로 했다. 저녁에 시간을 맞추고 약속 장소로 들고 나가보니 카트를 끌고 어느 아주머니 한분이 나와 계셨다. 이제 당근으로 나눔을 여러 차례하고 나니 사람들의 반응과 태도도 보였다. 나눔의 경우에는 생각보다 쑥스러워 고마움을 표현하고 싶어도 제대로 하지 못하고 얼버무리거나 머뭇거리는 분들이 많았는데 이 분도 역시 무슨 말을 해야할지 몰리 머뭇머뭇하시더니 고마워서 어떡하죠 하고 말끝을 흐리셨다.
어떻게 인사해야할지 어려운 걸까 혹은 물건을 그냥 받는 게 낯선 일인 걸까. 나도 잘 모르겠지만 일단 필요한 이에게 물건이 갔으면 내가 할 일은 다한 것이니 인사를 받지 못해도 서운해하지 말자고 나눔을 시작하고 다양한 사람들의 다양한 반응을 마주 하면서 마음먹었었다. 잘 쓰시면 좋죠. 나는 웃으먀 한마디만 건네고 인사를 하고 돌아섰다. 돌아선 내 뒷통수로 고맙습니다 안녕히가세요. 인사가 들렸다. 저도 고마워요. 물건을 이렇게 덜게 해주어서. 유용하게 쓰신다면 그게 정말로 뿌듯할 거에요. 마음속으로 답하며 집으로 향했다.
아빠. 고맙다 미안하다 사랑한다 표현을 하는 게 어렵다고 했었지. 그런 걸 해본 적이 없어서 어떻게 해야할지 몰랐다고. 하지만 그런 말들이 없다면 아무런 감각없이 지나가버리는 의미없는 순간들이 되는 걸 아빠도 어느 순간 알았던 거지? 그래서 날이 갈수록 고맙다 미안하다고 했던 거지. 당신의 물건들에 이제는 사람들이 고맙다고 해요. 그러니 뿌듯해하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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