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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아빠 집을 정리하며

유품정리Day34. 폐기물을 정리하며, 후회가 남지 않기를 바랄 뿐.

문성moonsong 2024. 11. 14. 11:07

정리를 하는 내내 가장 어려웠던 것이 분류였다. 
부모님의 나이만큼 어쩌면 그보다 더 오래된 것들부터 아빠가 돌아가시기 직전에 산 물건들까지 온갖 종류의 물건들이 뒤엉켜 있었고 그 물건들을 어디서부터 어떻게 손대야하는지부터가 막막했다. 분류부터 해야겠다고 마음 먹고 물건들을 모으기 시작했지만 각 방, 부엌, 욕실, 거실마다 물건들이 흩어져 있어서 더더욱 분류를 힘들게 했다.
결국은 가장 분량이 많은 품목들부터 한 품목씩 모으는 편을 택하게 되었는데, 거기에서 쓸 수 있는 것과 아닌 것을 분류하는 것도, 쓸 수 있는 것들을 기부할 것인지 나눔할 것인지 혹은 이후에 가족들이 사용할 것을 고려해 남겨둘 것인지를 분류해야하는 큰 산에 부딪혔다. 가족들에게 혹시라도 갖고 가고 싶은 것들이 있는지 묻고 다음으로는 공동으로 사용할 것이 있는지 고려해보는데에도 한참이 걸렸다. 언니들에게 의견을 묻고 형부에게도 의견을 묻고 나서는 주택을 관리하면서 필요했던 게 무엇이었을까 아빠의 입장에서 생각해봐야 했다. 이제 아빠를 대신해서 나 그리고 우리 자매들이 주택을 관리해야 하는 상황이 되었기에. 
그렇게 분류를 끝내고 나서도 다시 품목 하나 하나를 보며 기부할 것인지 남길 것인지 분류하고 한편으로는 기부물품을 받는 단체에서 제시하는 기준에 맞는지도 확인해야 했다. 단체에서 받지 않는 품목들은 당근으로 나눔을 할지 아니면 폐기를 할지도 결정해야 했다. 그렇게 가족들에게 쓸모가 있는지 여부, 기부가능 여부, 나눔가능 여부를 모두 통과하고 남은 물건들과 그 중에서 걸러진 물건들이 남았다. 
걸러진 물건들을 폐기할 차례였다. 폐기할 물건들과도 씨름하게 될 줄은 몰랐는데, 역시나 폐기물도 분류를 해야 했다. 폐기물도 역시나 구청이나 구청이 지정한 업체에서 무료로 수거하는 대형폐기물과 소형폐기물들에 해당하는지, 아니라면 분리수거 원칙에 따라 쓰레기봉투에 들어갈 수 있는 생활폐기물인지, 분리수거가능한 재활용품인지, 그도저도 아니라면 특수마대에 넣어서 버려야하는 불용성폐기물인지 분류해야했다.
그렇게 폐기할 물건들 중에서 신고할 소형폐기물들- 쓸모 없는 그리고 누구도 가져가지 않을 소형가전제품-을 모았다. 

소형 선풍기 두 대, 미니 믹서기 두 대, 커피드리퍼. 믹서기는 요양사님이 아빠의 식사를 준비할 때 사용하셨던 것이었을 테고 나머지는 아빠가 - 종종 그랬듯- 어디선가 멀쩡한 것을 버리는 게 아까워서 가져온 것 같았다. 아빠는 가져온 이 물건들을 한 번이라도 썼을까. 이 물건들은 수거되고 나면, 어떤 운명을 맞을까. 다시 수리되어 새로운 쓰임을 얻게 될까 아니면 분리되어 고철과 플라스틱으로 쓰레기장으로 향할까. 
어떤 식으로든 마지막으로 향할 것이다. 
새삼 가슴이 서늘해졌다. 물건들과 다를 바 없이 나도 언젠가 마지막으로 향할 것이다. 엄마아빠가 떠나고 물건들을 정리하며 나의 마지막을 그리고 그 마지막에 이르는 과정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다. 이제는 눈앞의 폐기물들이 다시 한번 나에게 마지막을 어떻게 마무리지을 것인지 묻고 있었다.
엄마아빠. 지금 나는 단 하나의 생각뿐, 엄마아빠가 떠나는 순간까지 다만 당신들과의 시간이 후회가 남지 않도록 살아왔듯이 나 자신과의 시간도 후회가 남지 않도록 살고 싶을 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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