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빠의 선풍기 두 대. 전자레인지. 가스레인지들을 남겼다.
사실 아빠의 유품을 정리하는 내내 아빠가 떠나고도 다음을 생각해야한다는 게 그래서 물건들을 다음의 필요를 생각하며 정리해야한다는 게 줄곧 마음에 부담이었다. 그래도 결국 남은 사람들은 남은 대로 살아가야한다는 사실을 나 외에 언니들은 그리고 다른 이들은 잘 받아들이고 있는 것 같은데, 나는 어째서 이리 쉽지 않은지.
정리하다가 멈추고 하다가 멈추기를 반복하며 지나온 한달여. 남은 물건들 중에 쓸 가능성이 높은 물건들을 빼두고 있는 지금 시점에도 물건의 용도를 따지는 순간순간 마음이 편치 않을 때가 종종 있다. 선풍기 두대. 가스렌지. 전자레인지를 내리면서도 그랬다.
여름 내 아빠가 거실에서 티비를 보면 맞은 편 부엌에선 아빠를 살펴주시던 요양사님이 요리를 하던 주방의 열기를 빼려고 돌아가던 두 대의 선풍기. 가스레인지에서 끓던 아빠의 큼지막한 주전자. 전자레인지로 돌려서 익히던 아빠의 간식 고구마와 우유. 이 물건들을 옮기며 일부러 생각하지 않아도 자연스럽게 떠오르는 모습들에 다시 마음 한구석이 아렸다.


이 물건들이 아빠도 엄마도 아님을 알지만, 함부로 할 수 없는 건 내가 이 물건들이 그들과 함께해온 무엇임을 너무나 잘 알고 있기 때문에. 엄마와 아빠의 시간들은 내 삶의 일부이기에.
엄마, 아빠. 이 물건들을 내가 쓰게 되든 누군가에게 나누게 되든 이들의 쓰임을 기쁘게 내려다보아. 그럴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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