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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아빠 집을 정리하며

유품정리Day31. 유품을 정리하며 맞는 생각지도 못한 순간들, 이를테면 필리핀에서 온 가톨릭신자와의 조우.

문성moonsong 2024. 11. 11. 15:10

아빠의 유품을 정리하며 생각지도 못한 순간들을 맞는다. 이를테면, 필리핀에서 온 독실한 카톨릭 신자와의 당근나눔의 순간. 그리고 서로의 앞날을 기도해주며 헤어지는 따뜻한 마음을 마주하는 일. 

시작은 당근에 나눔으로 오래된 전기그릴을 내놓은 것이었다. 아빠의 물건들을 정리하다가 구석진 공간에 몇 년간 쌓여있던 것들을 드디어 꺼내어 확인하게 되었고 그 중에 하나가 바로 그 전기그릴이었다. 삼성마크가 선명하긴 했지만 오래 전부터 쓰고는 제대로 닦아두지 않았는지 기름때가 먼지와 함께 엉겨 더러운 상태였다. 그대로 소형가전폐기물로 내놓을 것인지, 아니면 그래도 쓸 이를 찾아 나눔을 할 것인지 고민하다가 혹시나 하고 당근에 내놓았다. 물론 고민을 하지 않은 건 아니었다. 기름때가 찐득하게 눌러붙은 물건을 그 누가 가져가고 싶어할까  혹 기분나빠하진 않을까 싶기도 했다. 그래도 상태사진을 정직하게 찍고 깨끗이 씻어 사용하셔야할 거라고 자세한 설명을 덧붙여 올려보기로 했다. 

다른 물건들과 함께 하나씩 차례대로 당근에 올라갔는데 다른 물건들은 순식간에 나눔을 신청했지만 전기그릴은 아무도 신청하지 않아서 역시 내가 너무 무리하게 올린 건가 생각하던 차, 갑자기 당근 알림진동이 울렸다. 내가 가져가도 될까요? 물론 가져가실 수 있어요 반가워하며 날짜와 시간을 잡았는데 다른 알람이 울렸다. 계속 나가지 않았던 기도하는 예수 그리고 손자수 액자까지도 신청한 것이었다. 자세히 보니 동일한 사람이었다. 전기그릴 나눔신청하신 분 맞나요 액자도 가져가실 건가요 물었더니 네 괜찮습니까 답변이 왔다. 네 물론이죠, 자세히 상태를 설명하고 나니 내일 밤에 우리는 만나에요. 라고 답변이 왔다. 그 마지막 문장에 어쩌면 외국인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머리를 스쳤다. 최근에 외국인들도 당근으로 거래를 많이 한다는 걸 알고 있었기에 그닥 놀랍진 않았지만. 

다음날 약속 시간에 맞춰 카트에 액자 두개와 그릴을 단단히 묶고 약속장소에 나갔다. 약속장소 몇 발짝 앞에서 자전거를 타고 있던 누군가가 당근이세요, 나를 멈춰세웠다. 네 맞아요. 익숙한 듯 자전거에서 내려서 짐칸에 꽁꽁 맨 고정끈을 풀고 있기에 몇 마디 대화를 건넸다. 혹시 외국인이세요? 맞아요. 어디에서 오셨는지 물어봐도 되나요? 필리핀이요. 아 그럼 카톨릭이신가봐요. 맞아요 그래서, 액자를 보고 말을 걸었어요. 잘 됐네요. 그릴은 꼭 깨끗이 닦아서 쓰셔야 해요. 오랫동안 쓰지 않은 거라서요. 괜찮아요. 고맙습니다. 네 잘 쓰세요. 그런데 액자가 큰데 가져가실 수 있을까요? 천천히 가져가면 되요. 들고 갈 수 있어요. 네 조심히 가세요. 그는 혜화동에 살고 있다고 했다. 우리집까지 족히 30분이 넘는 거리를 자전거를 타고 와서 이 무거운 액자 두개와 그릴을 들고 다시 가야하는데 기쁨에 찬 그의 얼굴에 나는 조심히 가라고 웃으며 인사를 건넬 수밖에 없었다. 우리는 그렇게 헤어졌고 나는 그가 무사히 집에 돌아가길 빌었다. 

그는 당근으로 인사를 또 남겼다. Thank you so much for being generous, take good care and be healthy always. 그래서 나 역시 답해주었다. hope you can use them useful and meaningful, you also take care and be healthy in God. 

아빠가 신앙으로 들였던 두개의 액자는 다른 이의 신앙과 함께 하기 위해 갔어, 아빠. 쓰레기로 폐기되지 않고 그의 신앙과 함께할 수 있어서 다행이야. 낯선 이국에서 힘든 순간들에 위안이 되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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