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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아빠 집을 정리하며

유품정리Day37. 엄마아빠의 이부자리에서 추억의 냄새를 맡았다.

문성moonsong 2024. 11. 18. 22:22

엄마아빠가 사용했던 그리고 손님용으로 준비해두었던 이부자리를 옮겨두었다. 

폐기할 유품들만 두고 남겨둘 물건들을 여전히 옮기는 중. 물건의 종류도 분량도 상당하기에 매일 조금씩 옮기는 것 외에는 별수가 없었다. 우선 식기, 주방용품들, 다음으로 가벼운 가전제품들을 옮기고 나서 이부자리 차례였다. 사실은 계속해서 미루어두고 있었던 일이었다.  

아빠가 갑작스레 떠나고 난 뒤, 아빠가 늘 누워있던 자리를 치울 수 없었다. 사실은 아빠가 며칠이나 일어나는 것조차 힘겨워해서 이부자리에 실수를 한 적도 있었기에 매트위의 시트도 이불도 다 빨래를 해서 접어둔 채였다. 아빠가 쓰던 것들을 치우는 게 아빠가 돌아가신 것을 돌이킬 수 없음을 확인하기라도 하는 듯 해서 오늘은 아직 아니야, 다른 것들부터 치우자 하고 미룬지가 이미 한달을 넘어가고 있었다. 

이제 더는 기부할 것도 없으니 남은 것들 중에서 보관할 것을 골라야하는 상황이 되고 나니 어찌할 수 없었다. 안방의 침대와 이불장 그리고 부엌옆방의 이불장을 차지하고 있던 이부자리 용품들을 하나씩 살펴보았다. 침대의 베개에선 아직 희미하게 아빠의 냄새가 났다. 형언할 수 없는 아빠 특유의 냄새. 아빠는 여름의 끝자락에 떠난지라 침대에 놓인 이불과 시트는 모두 여름것이었다.

이번에는 안방 이불장을 열었다. 차곡차곡 쌓인 이불과 요 그리고 베개와 담요들을 눈으로 훑으며 엄마의 마지막 날들, 어린 시절 깔던 요자리와 두툼한 솜이불에서 나던 바삭한 햇살내음, 눈에 익은 오오래된 담요에서 나는 희미한 먼지냄새까지. 갑자기 어린시절 요 위를 뒹굴며 엄마 품에 안겼던 순간이 사무치게 그리웠다. 한참 머리를 묻고 그 오래된 내음을 맡았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부엌 옆방 어린시절 언니들의 방이었다가 친할머니가 돌아가시기 전에 머물렀던 방이었다가 나중에는 손님들이 머물던 방의 이불장을 열었다. 이번에도 버리지 않고 모아두는 엄마아빠의 성격탓에 유년시절의 기억속의 순간들에도 함께했던 요와 담요들을 마주했다. 다시 하나씩 만져보며 추억속에 빠져들다가 정신을 차렸다. 

베개와 이불, 시트와 토퍼, 매트리스, 다른 누가 써도 괜찮아 할 것들만 곱게 접어 하나씩 다른 빈 공간으로 옮겨두었다. 첫날에는 서너개로 끝날 줄 알았는데 다음날 서너개, 그 다음날 다시 서너개, 계속해서 남길 것들이 늘어났다. 어쩌면, 다른 이들이 괜찮다고 할만한 것들이 아니라 그냥 내가 간직하고 싶은 것들인지도 모른다. 엄마아빠 그리고 우리집 내음이 담긴 추억의 물건들을 나는 차마 버리지 못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그래도, 내가 쓰면 되잖아. 혹 다른 이들이 온다면 그래서 이부자리가 필요하다면 그들에게 깔아주면 되잖아. 엄마아빠 그렇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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