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직 쓰지 않은 두루마리 휴지. 각티슈. 부엌의 소모품들을 모아서 다른 곳으로 옮겨두었다. 생활에 필요한 물건들을 보며 살아간다는 건 이런 물건들을 건사해야한다는 것임을 새삼 생각했다.

우리 자매들은 일주일에 한번씩 돌아가면서 장을 봤다. 아빠의 일주일치 생활에 필요한 것들을 카톡을 할 수 있는 요양사님이 전달해주시면 목록을 보고 장을 보고 아빠와 식사를 하곤 했다. 아빠는 요양사님과 함께 장을 보러가기도 하고 혼자 혹은 친구분들과 어울려 보내시기도 했지만 꼭 필요한 것들은 우리가 챙겨왔다. 이미 엄마가 아프기 전부터였으니 언제부터였는지 기억도 가물가물했다.
한달에 한 번씩 돌아오는 장보기가 귀찮았었다. 아빠는 제대로 눈길도 주지 않고 따뜻한 말 한마디 건네지 않는데 요양사님이 말한 게 진짜일까 생각하곤 했다. 우리가 사주는 것에 와서 같이 밥먹는 것에 그렇게 신경을 쓰고 기다린다는 것을 이해하기가 너무 어려웠다. 다만 당신이 표현에 서툴렀고 노력하는 것도 오랜 시간이 걸리는 일이었다고 그래서 이따금 머뭇거리며 고생했다거나 가서 쉬라는 말로 나왔으리라고 짐작할 뿐.
생활용품들을 매일 쓰는 마음을 매일같이 표현했다면 그리 어색하고 어렵지 않았을텐데. 나는 마음을 아끼지 않고 표현하고 싶다. 폭포수처럼 넘쳐 흐르게 하고 싶다. 표현하면할수록 더 샘솟도록 그리서 매일이 좀 더 행복해지도록. 엄마아빠가 위에서 우리를 보면서도 매일이 좀더 기뻐지도록. 날 응원해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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