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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아빠 집을 정리하며

유품정리 Day43. 고민거리가 된 자개장에 씁쓸한 마음

문성moonsong 2024. 12. 16. 15:09

유품을 정리하는 내내 고민을 하게 만든 건 바로 자개장이었다. 

엄마와 아빠는 단층집에 집의 두 배 가까운 정원이 딸려 있던 이 집에서 살다가 90년대 초에 이웃집들처럼 층을 올려 다가구주택을 만들었다. 3층으로 이사하며 안방에 놓은 자개장은 아마도 엄마와 아빠의 꿈이자 성취의 증거였던 것 같다. 눈부시게 화려한 12자 장롱과 화장대와 수납장까지. 집을 짓는 동안 뒷집에 잠시 세를 들어 살다가 이곳에 이사했을 때 엄마와 아빠의 뿌듯해하던 얼굴들과 안방문을 열고 들어오면 창문으로 드는 눈부신 햇살에 반짝이던 자개장, 옻칠 특유의 향이 좋았다. 엄마의 아름다운 옷들이 걸려있던 왼쪽 장. 그리운 냄새까지도 함께 차곡차곡 쌓여있던 이불장. 아빠의 정장과 코트들이 걸려있던 오른쪽 장. 장문을 열고 엄마옷들 속에 얼굴을 파묻고 엄마 내음을 맡으며 눈물을 흘리던 시간도 아빠의 코트와 손수건들을 정리하며 눈물을 흘리던 시간도 그곳에 함께 있었다. 

 

그 자리를 30여년이 넘게 지켜온 자개장과 자개화장대, 수납장을 함부로 넘기고 싶지 않았지만 계속해서 가지고 있기에는 부담이 너무 컸다. 자개장은 부피가 너무 크고 무거워서 옮기는 것 자체가 쉽지 않았다. 혼자서는 불가능했고 업체들도 역시 아파트가 아닌 단독주택이라 사다리차로 옮기는 수밖에 없다고 했다. 게다가 옮긴다 해도 집을 보수하는 동안 보관할 곳도 마땅치 않았다. 마당에 비닐을 씌우고 보관한다 해도 다시 사다리차로 옮겨야했고 그렇게 오가는 비용만으로도 상당한 부담이 되었다. 자개를 매매하는 곳들을 여러군데 찾아보고 연락해보고 현장견적까지도 내보았지만 그들은 모두가 한결같이 입을 모아 말했다. 이미 차고넘치는 재고에 더는 받지 않는다고.  

이미 수많은 자개장들과 수없이 많은 이들의 노력이 담긴 아름다운 옻칠과 나전이 이런 방식으로 사라져왔겠구나 실감하지 않을 수 없었다. 무수히 많은 가구들이, 옛 것들이, 한옥이 이런 식으로 사라져왔구나. 혹시라도 누군가 가져가겠다고 한다면 내가 아닌 그 누구라도 소중히 여겨줄 수 있다면 기꺼이 내놓겠다는 결심을 하는 것도 어려운 일이었는데, 가져갈 이를 찾고 또 찾아도 결국 그 누구도 가져가지 않으려 한다는 걸 확인하는 순간 이상하게 마음이 너무 아팠다. 이렇게 물건과 함께 지나온 시간의 일부가 사라짐을 결국은 모든 것이 이렇게 부서지고 사라진다는 것을 직시해야함을, 가슴이 아프다는 이유로 부정할 수는 없음을 알았기에.

아름답고 상태가 좋은 건 맞지만, 가져가는 비용이 더 들기에 가져가지 않겠다는 가장 마지막으로 직접 상태를 보러온 사람이 하는 말에 나는 더 이상 노력할 자신이 없었다. 이미 유품정리업체들을 여덟군데나 미팅하고 견적을 내면서도 여러차례 부탁을 하고 정말 안타깝지만 요즘은 그 누구도 가져가지 않는다고, 알아봐준 업체도 거절했다는 이야기까지도 들은 터였다. 

나는 실낱같은 희망을 품고 유품정리업체와 약속한 정리날짜 전날 저녁에도 자개장을 보러오겠다는 이를 기다렸지만 결국은 그날 밤 전화해야했다. 누구도 가져가지 않겠다고 했으니 업체가 폐기처리하는 것에 동의한다고. 그분들은 안타까워하면서도 폐기하기 위해서는 부숴서 나누어 내려야한다는 걸 다시 한번 알려주었다. 나는 차마 모든 것을 그렇게 버릴 수 없어 화장대와 수납함은 보관할 수 있는 곳에 옮겨달라고 부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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