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성리뷰MoonsongReview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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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건 27

유품정리Day15. 약품류 두번째 정리

정리를 하다보니 여기저기에서 약이 나왔다. 엄마가 와병중이던 시절 간병인 선생님이 부탁했던 관장약, 아빠가 눈이 침침해져 쓰던 안약들, 물파스, 피부약을 보며 아빠가 호소하던 통증들이 떠올랐다. 자고 일어나도 피곤하게 하는 근육통, 간지럼증•••. 나이 들어가는 게 당연한 일임에도 슬픔이 어리는 게 참 싫었다. 엄마와 아빠의 설움을 지켜보는 게 힘들었다. 힘이 되어주고 싶었지만 한편으로는 어쩔 수 없다면 우리 웃으며 받아들여보자고 이야기하고 싶었는데, 그건 차마 하기 어려운 말이었다. 당신들처럼 나도 늙어가며 아픈 순간들에 서러울 것임을 알고 있었기에. 그래도 엄마, 아빠, 더는 아프지 않고 평안히 쉬었으면 해. 내려다보며 빙그레 웃고 열심히 살아가는 우리를 지켜봐주었으면 해.

유품정리Day14. 산수화. 괴석도 나눔

아빠가 가지고 있던 액자들을 사진찍어 당근에 올리곤 그런 류의 액자(그림)들이 아빠와 같은 어르신들에게 인기가 많다는 걸 실감했다. 번호를 붙여 갖고싶은 걸 이야기해달라고 했더니 어떤 분이 신수화와 괴석도를 갖고 싶다고 하셨다.흔쾌히 시간약속을 정하고 당일날, 시간에 맞춰 액자를 내렸다. 산수화는 가로길이가 양팔이 닿지 않을 만큼 컸고 못에 걸린 걸이를 하나 빼자마자 묵직한 무게에 넘어질 뻔 했다. 조심스럽게 애를 쓰며 내리고도 계단을 지나 대문앞까지 혹시라도 무게 때문에 떨어뜨릴까봐 그래서 액자프레임이나 유리에 손상이 갈까봐 손과 팔에 온 힘을 주고 있었다. 그렇게 간신히 대문앞까지 가져다 두고 잠시 마트에 들렀는데 마침 약속시간보다 이르게 도착하셨다는 문자를 받았다. 잠시 밖에 나와있는데 액자들은 대..

유품정리Day12. 의자 나눔

의자는 아빠의 필수품이었고 늘 집에는 의자가 많았다. 아빠는 마지막 몇년을 대부분의 시간 의자에 앉아서 티비를 보거나 책을 읽거나 필사를 하고 사람들을 초대해 이야기 나누며 보냈다. 혼자가 되기 전 엄마와 함께할 때에도, 우리들이 아직 본가에 살 때에도, 오가는 사람이 많아서, 가족수가 많아서, 늘 의자가 많을 수밖에 없었다. 이제 아빠가 가고 난 빈 집을 가만히 둘러볼 때마다 새삼 의자가 많은 걸 느꼈다. 정리를 하면서 의자들을 찍고 당근에 올렸다. 며칠이 지나서야 당근에 올려두었던 팔걸이 의자 한쌍을 가져가겠다는 분이 나타났다. 유품을 정리하는 일도 시간이 필요하다는 걸 느끼는 요즘이다. 어쩌면 당신을 애도하는 시간만큼 걸릴지도 모르겠어요. 아빠.

카테고리 없음 2024.10.13

유품정리Day11. 화이트보드 나눔

언제부터였는지는 기억나지 않는다. 아빠는 어딘가에서 이 화이트 보드를 가져오셨고 그대로 한켠에 놓여있던 이 보드를 쓴 건 나였다. 엄마가 한창 깜박깜박하는 증상이 심각해지기 시작했을 무렵, 잊지 말아야할 것들을 이곳에 적어주었다. 내가 집에 없어도 보고서 기억할 수 있도록 엄마가 잠에서 깨면 늘 시간을 보내던 거실 소파옆에 두었더랬다. 하지만 엄마는 어느 순간부터는 보드를 보는 것 자체를 잊어버린 듯 했다. 나는 그 사실이 너무 마음이 아파서 받아들이기 힘들었다. 엄마가 돌아가시고, 보드는 누구도 쓰지 않은 채 그 자리에 놓여있었다. 이제 3년이 되어가는 지금 아빠도 돌아가시고 이 보드를 당근에 내놓았고 어느 청년이 가져갔다. 엄마, 이제는 보드가 필요없지? 아빠는, 만났어? 그곳에서 엄마가 아빠를 보며..

유품정리Day9. 그릇류 나눔

음식정리에 이어 주방을 다시 정리하려는 순간 이 집에 누적된 시간을 새삼 실감했다. 너무 많은 물건에 어디서부터 손을 대야할지 아득해지며 어지러웠다. 그래도 다시 마음을 다잡고 할 수 있는 것부터 조금씩 하자 되뇌며 큰 언니와 만났다. 우선은 앞으로도 필요한 것들과 당장 재활용으로 분류가 가능한 것들 그리고 기증품으로 보내거나 나눔이 가능한 것들부터 추리기로 했다. 식기류와 수저류 그리고 냄비류들 중에서 가족들 모임에 쓸 그릇. 접시. 수저류를 박스 두개로 정리하고, 기증이 가능한 물품들 그리고 재활용으로 내놓을 플라스틱들을 모았다. 아름다운 그러나 거의 쓰지 않은 찻잔과 화려한 접시들. 엄마는 이 그릇들을 어떤 마음으로 모았을까. 아빠는 이 그릇들을 바라보며 무슨 생각을 했을까. 어째서 제대로 쓰지 않..

유품정리Day6. 7. 간병보조용구 나눔

여섯번째 날, 워커를 당근에 올렸다. 역시나 금세 몇 명에게 연락이 왔다. 간병하는 이들이 많아서 일까 아니면 간병하는 이들이 당근을 많이 찾기 때문일까. 나눔을 몇 번 해보면서 깨달은 건 모두에게 답장을 보내거나 모두에게 주지 못해서 마음쓸 필요는 없다는 것이었다. 나눔이벤트로 올리면 각자 자신의 이야기를 적어보내기 때문에 그들의 이야기를 읽어보고 가장 필요하거나 적절하게 쓸 사람으로 보이는 이에게로 연락하는 것이 지금까지 경험해본 결과 가장 좋은 방법이었다. 정말로 필요한 이들은 대개 인사를 하고 자신이 필요한 이유를 적어주었는데 그렇지 않은 불쑥 내가 가져가고 싶다는 한 문장이 오곤 했다. 나눌때에도 물건을 가져가는데 인사를 하는 건 대개 꼭 필요한 이들이었고 그들은 감사하다는 말을 아끼지 않았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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