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성리뷰MoonsongReview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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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리 42

유품정리Day33. 소파뒤에서 발견한 엄마의 물건들은 아직 마음을 아프게 한다.

소파 뒤 구석에서 엄마의 유품을 발견하고 기부품으로 보냈다. 언듯 장을 보러갈 때 쓰는 가방처럼 보이는 무언가가 소파 뒤 벽에 비스듬히 기대어 세워져 있었다. 가방은 지퍼로 완전히 펼칠 수 있는 구조오 되어 있는 보조가방이었는데 안에는 아직 한 번도 쓰지 않은 내의와 덧신 그리고 양말이 나왔다. 어리둥절해서 묶음을 하나씩 살펴보며 깨달았다. 엄마가 있던 병원에서 간병인과 함께 지내던 몇 달, 간병인이 보내달라고 했던 것들이었음을. 마음이 쿵 내려앉았다. 나는 여전히 엄마가 떠오르면 마음이 무너졌다. 눈물이 고이다 흐르기 시작했다. 아빠보다 더 오랜 시간 아파서 스러지는 엄마를 보았기 때문일까. 엄마가 떠난 건 이미 사년이 다되어 가는 일이었지만 아빠가 떠나고 두 달째 아빠와 엄마의 흔적을 함께 마주할 때..

유품정리Day32. 아빠의 데이베드, 큰 언니의 소파로

많은 물건들을 정리하고 가구들이 남았다. 여기저기 알아보았지만 가구를 매입하는 이들은 견적을 보내달라고 하고는 사진을 보고 모두 거절하고 말았다. 매입을 할 가치가 없는 가구라며 그냥 처분하라고 했다. 다들 이 집과 함께 나이를 먹어온 오래되고 낡은 가구들이지만 그 중에서 딱 두가지 가치 있는 가구는 자개장 세트 그리고 데이베드였다. 특히 데이베드는 아빠가 거실에서 소파겸용 침대로 계속 사용한지 일이년밖이 되지 않는 것이었다. 엄마가 돌아가시고 얼마 지난 어느 날 거실을 차지하고 있었다. 아빠가 그게 그렇게 사고싶었나 어이가 없었지만 혼자 지내는 대부분의 시간을 거실에서 사람들을 불러 차마시거나 점심식사를 하고 티비를 보는지라 그런가보다 했었다. 여름 내 아빠는 데이베드에 앉아 있곤 했다. 현관문을 열고..

유품정리Day31. 유품을 정리하며 맞는 생각지도 못한 순간들, 이를테면 필리핀에서 온 가톨릭신자와의 조우.

아빠의 유품을 정리하며 생각지도 못한 순간들을 맞는다. 이를테면, 필리핀에서 온 독실한 카톨릭 신자와의 당근나눔의 순간. 그리고 서로의 앞날을 기도해주며 헤어지는 따뜻한 마음을 마주하는 일. 시작은 당근에 나눔으로 오래된 전기그릴을 내놓은 것이었다. 아빠의 물건들을 정리하다가 구석진 공간에 몇 년간 쌓여있던 것들을 드디어 꺼내어 확인하게 되었고 그 중에 하나가 바로 그 전기그릴이었다. 삼성마크가 선명하긴 했지만 오래 전부터 쓰고는 제대로 닦아두지 않았는지 기름때가 먼지와 함께 엉겨 더러운 상태였다. 그대로 소형가전폐기물로 내놓을 것인지, 아니면 그래도 쓸 이를 찾아 나눔을 할 것인지 고민하다가 혹시나 하고 당근에 내놓았다. 물론 고민을 하지 않은 건 아니었다. 기름때가 찐득하게 눌러붙은 물건을 그 누가 ..

유품정리Day30. 다리미가 필요한 이에게, 다리미를.

다리미를 당근 나눔으로 정리했다. 그런데 이 다리미는 내가 사용해본 적도 본 적도 없는 것이었다. 그랬다. 정리를 하면서 깨달은 건 아빠는 우리 가족이 사용한 적이 없는 오래된 물건들을 많이도 가지고 있었다는 것이었다. 아마도 어디선가 누군가가 내놓은 것을 계속해서 가져왔던 것이리라. 이 다리미 역시 그중의 하나였다. 아빠는 버려지는 물건들이 아까웠던 것이리라. 그래서 그 물건들을 방에 거실에 옥상에 마당에 모아두고 언젠가 쓸 날을 기다렸던 걸까. 아니면 누군가에게 주려 했던 걸까. 이제는 당신이 가고 내가 이 물건들을 대신 사람들에게 나누어주게 되었다. 콘센트를 꽂아 테스트해보니 충분히 뜨거워지는 다리미 열판. 우선 기부기준에 맞는지 확인해보려고 살펴보아도 제조년월일을 찾을 수 없었다. 분명 10년은 ..

유품정리Day29. 밥솥을 나누며 고마움은 표현하는 것이라는 걸 생각했다.

밥솥을 당근으로 나눴다. 기부로 하는 것이 훨씬 편하고 기부영수증도 발행되지만 기부를 받는 단체들은 10년이 넘은 전자제품은 받지 않는다. 전자제품외에도 다양한 물품에 대한 제한조건이 있기에 품목에 대한 기준을 자세히 적어둔 안내문을 꼼꼼히 읽어봐야한다. 당연히 이해가 된다. 기부를 받은 물건이 쓸모가 없다면 수거도 정리도 폐기도 모두 인력과 비용이 드는 일이 되고 결국은 의도했던 대로 재활용도 다른 이를 위한 도움도 불가능한 일이 된다. 누군가가 매장에 와서 살 수 있을 만한 컨디션이 아니라면 내놓기가 어렵고 오래된 물건보다는 새로운 물건을 선호하는 게 당연한 세태에 더더욱 누구도 거들떠보지 않는 물건을 두는 건 짐이 될 뿐이다. 그러니 안내문을 읽고 기준에 맞지 않는 밥솥, 이 10년이 넘은 제품을 ..

유품정리Day28. 2차 문구 학용품 기부, 아빠의 평생습관을 지역 공부방에 나누다.

서재의 책들과 서류들이 빠져나가고 나고 서랍과 책장에 남아있던 물건들 중에 학용품과 사무용품들을 모았다. 그래도 유품정리업체에 맡겨버릴까 하다가 그래도 남아있던 빈 박스 하나를 어느 정도 채워 다시 한번 지역공부방으로 보내주는 기부처로 보내기로 했다. 아빠는 오랫동안 책과 펜, 필사와 함께했다. 거의 돌아가시기 직전에 기력이 약해지실 때까지 그렇게 무언가를 읽고 적고 정리해온 일생이었다. 마지막 아빠의 책상에는 주로 성경책과 신앙에 관련한 서적들이 자리하고 있었다. 엄마가 돌아가시고 나서 엄마에 대한 미안함과 외로움을 신앙에 어느 정도 의지하셨다는 게 다행이라는 생각을 하곤 했다. 이제 남은 물건들을 모아보니 삼각자, 컴퍼스, 대형자, 줄자, 각도계, 어린 시절 늘어선 책상 가운데 원형 테이블에 앉아 학..

유품정리Day27. 간병용품을 보내며 누군가의 간병을 응원하기

이제 얼마 남지 않은 물건들을 돌아보며 차분히 사진을 찍고 유품정리 견적을 내려는데 처분하지 못하고 남아있던 물건들이 다시 한번 눈에 걸렸다. 그중 하나가 바로 이 욕창방지 매트리스. 엄마가 병상에서 일어나지 못하는 상태가 되었던 막바지 무렵, 우주복과 욕창방지매트리스, 가로로 긴 쿠션과 같은 의료기기나 간병용품들이 필요하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 하나씩 구매해야했다. 아빠가 갑작스레 아파서 잘 일어나지 못했던 지난 늦여름, 결국은 병상에서의 시간으로 이어지고 욕창매트리스를 구해야했다. 정신없이 병원을 오가며 병원 앞에서 욕창매트리스를 대여했을 때에는 몰랐다. 우리집에 엄마가 쓰던 욕창 매트리가 있었다는 것을 까마득히 잊고 있었다. 아빠가 돌아가시고 장례절차를 마치고 가족회의를 거쳐 집을 정리하기 시작하고 ..

유품정리Day26. 끝이 없을 것 같았던 분류가 가을과 함께 끝나간다.

굿윌스토어에서 다녀갔다. 15박스와 굿윌스토어에서 증정한 기증용 1봉투를 수거하러 오신 직원분과 함께 날랐다. 미처 일일이 사진을 찍지 못하고 박스에 포장한 물건들이 대부분이라 수량을 확인하려고 박스를 보며 기억을 더듬어본다. 일차적으로 기부하고 나서 발견한 곱게 보관해둔 옷들과 악세사리, 신발과 가방, 문구류와 잡화들. 역시 일차적으로 기부할 때 미처 정리하지 못했던 그릇과 주방용품들. 고스란히 보관만 해두셨던 일회용품들. 모두 다시 새로운 이에게 쓰임을 다하는 편이 좋겠다 싶었다. 책들과 함께 온갖 종류의 물건들을 분류하느라 늘어두었다가 책도 사라지고 수거도 마무리되고 나자 집은 텅 빈 것처럼 느껴졌다. 커튼까지도 정리하고 나니 낯설게 느껴질 정도로 다른 집이 되었다. 이제는 앨범이나 가족모임에 쓸 ..

유품정리Day25. 책정리. 아빠의 꿈, 환상 그리고 추억들을 나누다.

단일품목으로는 가장 많은 갯수가 아닐까 싶은 품목이 바로 책이었다. 옷과 식기류 다음으로 나를 부담스럽게 만들었던 것도 역시 책이었다. 책은 쌓이면 무게가 상당하다는 것도 알고 있었고 그리 많은 짐이 아님에도 일인가구로 이사를 항 때마다 애를 먹인 것도 결국은 책이었기에 오십여년을 쌓아온 아빠의 책들은 부담을 넘어 압박감으로 다가왔다. 게다가 아빠는 언니들이 떠난 방에도 내가 쓰던 방에도 서재를 만들어두고는 책을 나누어 보관하고 있었기에 두군데에서 책을 모으는 것부터가 일이었다. 기부는 불가능했다. 아빠가 갖고 있는 책들은 워낙 오래된 것들이 많아서 10년 이하만 받는 기부처에는 택도 없었고 인터넷을 뒤지며 찾아본 결과 헌책방에서도 사진부터 보내달라고 했다. 사진을 자세히 찍어서 보내고 나니 매입은 안 ..

유품정리Day24. 부엌2차 정리. 50여년의 세월쌓인 건 하루만에 정리가 안 된다.

부엌을 일차로 정리하고 기부도 마치고 나서는 한동안 부엌을 정리할 엄두가 나지 않았다. 절반도 줄어들지 않은 물건들, 꺼내두고 나니 더 많은 물건들로 아수라장이 된 듯한 모습이 다시 어디서부터 어떻게 시작해야할지 모르겠다는 생각뿐. 특히 액자를 잔뜩 내리고 나서는 온몸이 아파서 한참을 쉬었고 그리고 나서도 부엌은 외면하고 다른 곳들을 정리했지만, 결국은 해야할 일이었기에 다시금 맘을 다잡았다. 50여년이 가까이 한 곳에서 사신 엄마아빠는 물건이 많을 수 밖에. 조금씩 조금씩 계속해나가다보면 끝이 보이겠지. 미리 겁먹지 말자. 부엌의 물건들을 어떻게 분류할지 머릿속으로 시뮬레이션해보고 각 분류마다 어떻게 처리할지도 검색해본 결과, 깨끗이 씻어서 기부할 수 있는 것들은 기부하고 재활용으로 내놓을 것들은 내놓..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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